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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2023년

고명재『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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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도 너무 좋은데 이 산문집 역시 정말 좋다는 리뷰를 읽고 나도 찾아 읽어봤다.

 

작가에 대한 아무 정보없이 다 읽고 나서 프로필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데........세상을 많이 겪은 사람이 쓴 글 같은 이 분위기 무엇~

 

글이 참 따뜻하고 예뻐서 좋았다.

자라면서 여러가지 힘든 일도 많았던 듯 싶어 그게 안쓰럽다가도,

그러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자란 사람이라는게 느껴져 되게 따뜻하기도 했다.

산문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읽으면서, 읽고 나서 이 책이 점점 좋아졌다.

작가의 사고가 아주 기발하기도 했다. 돌돌돌~ ㅋㅋ

 

일생을 두고 사랑했다던, 자신을 길러준 비구니가 대체 누구였는지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음 ㅠ.ㅠ

왜 잠시 절에 살았고 왜 비구니의 손에 길러졌는지 알려주셔야죠~~에잉~~

 


 

예쁘고 좋은 글귀가 사방천지에 널려 있어 다 밑줄을 그을 수가 없었다.

책을 고대로 옮겨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게중 내 마음과도 같은 거 몇자 적어본다.

 

1

부사는 부연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부차적인 말이나 부수적인 표현이 누군가에겐 목숨만큼 얻기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문장을 쓸 때 부사를 빼라는 문장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아요.

인생은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울고 웃으니까요.)

 

2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아주 깊고 추운 십이월의 새벽이었다.

뜬금없이 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었는데, 여....(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먼저 받았다.

"여보시오." 거실에 있는 할머니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나직하게 들렸다.

보통 그럴 때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엄마....." 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드럽고 둥근 목소리.

목련을 말아둔 것처럼 동그랗고 깨끗한 엄마 목소리.

내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엄마, 엄마....나 너무 힘들어.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무겁고 아파. 엄마 미안해. 명재는 잘 있어?"

바로 그때 나는 물에 들어간 것처럼 숨을 참았다.

냄비에 귀가 눌어붙어버린 것처럼 심장이 뛰고 가슴은 가야금처럼 팽팽하졌다.

"엄마....나 너무 힘들고 사는 게 슬퍼. 돈 버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이야?"

바로 거기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반짝하고 내 안의 무언가가 빛을 내더니 멈추는 게 지키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내 생애 그렇게 조용히 수화기를 내린 적 없지.

혹여나 할머니나  엄마가 들을까 엄마와 딸의 대화가 혹시 중단될까봐

물방울로 두른 집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 조심 수화기를 내려두고서 나도 혼자 엄마, 하고 벙긋거렸다.

 

사랑이 뭘까. 그건 존재가 위태로울 때 등대처럼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3

어쩌면 홀로 불멸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형태의 지옥이 아닐까.

(도깨비가 생각나는 글귀였다.)

 

4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올 것이 있다.

비와 눈은 오는 것.

기다리는 것.

꿈의 속성은 비와 눈처럼 녹느다는 것.

비와 눈과 사람은 사라지는 것.

그렇게 사라지며 강하게 남아 있는 것.

남아서 쓰는 것.

가슴을 쏟는 것.

열고 사는 것.

무력하지만 무력한 채로 향기로운 것.

그렇게 행과 행 사이를 날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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