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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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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리 해답이 없었다.

지극히 복잡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에 대해 삶이 부여하는 그런 일반적인 대답만 있을 뿐이었다.

그 대답이란, 그날그날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것, 즉 잊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잠으로 잊을 수는 없다.

 

2

"어쩝니까? 그런 어리석은 구시대적 방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데요." 브론스키가 말했다.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내가 알기로 오직 이성에 따른 결혼만이 행복할 수 있어요."

"그래요. 하지만 그 대신 이성에 따른 결혼의 행복도 종종 먼지처럼 흩어지곤 하잖습니까? 인정받지 못한 그 열정의 출현 탓에 말입니다." 브론스키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방종한 시기를 보낸 이후를 이성에 따른 결혼이라고 부르죠. 그것은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홍역과도 같은 거예요."

"그렇다면 천연두 접종처럼 사랑을 예방하는 인공 백신도 발견해야 되겠군요."

"난 젊은 시절 하급 수도사에게 반한 적이 있어요." 먀흐카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 일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뇨, 농담이 아니고요, 난 사랑을 알려면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을 고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벳시 공작부인이 말했다.

"결혼한 후에도요?" 대사 부인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후회하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외교관이 영국 속담을 인용했다.

 

3

"아니, 자네는 행복한 사나이야. 자네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잖아. 좋아하는 말도 있고, 개도 있고, 사냥도 할 수 있고, 농장도 있고."

"아마도 그건 내가 자신에게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에 한탄하지 않기 때문일 거야." 레빈은 키티를 떠올리며 말했다.

 

4

레빈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의 논쟁에서 종종 이런 모습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노력과 어마어마한 양의 정교한 논리와 말을 쏟아부은 후,

결국 논쟁하던 사람들은 서로 오랫동안 기를 쓰고 논쟁한 것이 아주 오래전 논쟁을 시작할 때부터

자기들이 이미 알던 것이며 다만 각자 선호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성향을 논박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성향을 지칭하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따금 논쟁을 하다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면

갑자기 자신도 그 성향을 좋아하게 되어 금방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되면 논쟁은 쓸모없는 것인양 ㅅ그라지고 만다.

때로는 그와 반대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즉 마침내 자신의 성향을 입 밖에 내고 무언가로부터 논거를 생각했는데,

그것이 훌륭하고 진실하게 표현도었다 싶으면 갑자기 상대방이 자기 말에 동의하며 논쟁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5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말 기쁠 텐데요!" 레빈이 말했다. "제발 결혼식에 날 불러 주십시오."

"난 이미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오징어하고 말입니다. 형, 알아?" 레빈은 형을 돌아 보았다. "미하일 세묘니치는 영양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음, 문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무엇에 관한 연구이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문제는 내가 분명 오징어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징어는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오징어야 방해하지 않겠지만, 아내는 방해할걸요."

 

6

독신일 땐 남들의 결혼 생활, 그들의 자질구레한 걱정과 다툼과 질투를 보며

그저 속으로 그들을 업신여기듯 비웃기만 했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장차 그의 결혼 생활에는 그와 비슷한 문제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형식까지도 모든 면에서 남들의 생활과 완전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와 아내의 생활은 별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예전에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하지만 이제는 그의 의지에 반하여

대단히 확고한 중요성을 띠게 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레빈도 그 사소한 것들을 정돈하는 일이 결코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빈은 자신이 가저생활에 대해 가장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모르게 가정생활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고 사소한 걱정거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될

사랑의 쾌락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다.

 

7

니콜라이가 동생을 불러낸 그날 밤 그가 삶과 작별을 고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킨

죽음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다들 그가 반드시 곧 죽으리라는 것, 그가 이미 반쯤 죽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이 사실을 감춘 채 그에게 병에 든 약을 주기도 하고 약과 의사를 찾기도 하면서,

그와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거짓, 혐오스럽고 모욕적이고 불경스러운 거짓이었다.

레빈은 성품의 특성상,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이러한 거짓을 특히 가슴 아프게 느꼈다.

 

8

그녀는 자신이 밷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이제 끝내야 해.'

'하지만 어떻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는 거울 앞의 안락 의자에 앉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날 길러 준 친척 아주머니에게 가야 하나, 아니면 돌리에게 가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혼자 외국으로 가야 하나, 그는 지금 혼자 서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마지막 싸움일까, 아니면 아직도 화해가 가능한 걸까,

이제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나의 옛 지인들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제 결별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숱한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생각에 온 마음으로 몰두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영혼 속에는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을 끄는 어떤 어렴풋한 생각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각할 수 없었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해 한 번 더 떠올린 순간, 그녀는 출산 후 병을 앓던 무렵과

그때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감정을 기억해 냈다.

'왜 난 죽지 않았을까?' 그때의 말고 그때의 감정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 순간 문득 그녀는 그녀의 영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래,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죽는거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수치와 치욕도, 세료쟈의 수치와 모욕도, 나의 끔찍한 수치도,

모든 게 죽음으로 구원받을거야. 죽자. 그러면 그도 뉘으치겠지.

날 불쌍히 여기고 날 사랑하게 되겠지. 나 때문에 괴로워도 하겠지.'

그녀는 안락의자에 앉아 스스로를 동정하는 굳은 미소를 띤 채 왼손에서 반지를 꼈다 뺐다 하며

자신이 죽은 후 그가 느낄 감정을 온갖 측면에서 생생히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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