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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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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안녕, 내 모든 것』 1 아무도 내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2 남의 이야기를 정말로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정말로 순수하게 존재하기는 할까.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려 한다면 몰라도. 3 서툰 희망이 생 전체를 서서히 좀먹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단호하게 체념하는 법을 배우기에 적절한 밤이었다. 4 고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고모는 완이가 옆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아이라는 존재에 옭매여 살고 있었다. 완이를 버거워하고 또 그만큼 사랑했다.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명제는 참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부모가 행복하다는 뜻이 아님을 나는 알게 되었다.
제프리 노먼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1 내가 아버지라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진다고 해서 그 느낌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밤에 딸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현실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내가 아버지로서 적격이 아니라는 느낌이 겹쳐졌다. 2 "남자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3 나는 그 애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이런 식의 전투를 몇 번이나 치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자식이 나이가 들면 부모가 해줄 수 없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자식을 세상의 모욕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일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 바퀴가 지상에 닿을 때마다 운이나 은총에 의해서 살아났다고 느끼기도 한다. 5 나에게도 자유로..
김수환 『그래도 사랑하라』 1 유명한 신학자이자 독일 복음교회 목사이며, 나치에 저항하다가 순교한 본회퍼는 "혼인에 있어서 사랑이 서약을 지켜준다기보다 서약이 사랑을 지켜준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부부가 서로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일수록 서로 사랑하기로 서약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식어 가던 사랑도 자연스럽게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2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당신만 울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3 대체로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주 하는데, 내가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더 많이 용서받..
기욤 뮈소 『7년후』 시간이 우리를 죽이게 될 때까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죽일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잠든 테레자 곁에서 뒤척이다가 몇 년 전 그녀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친구 Z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사랑 했을 거야." 당시에도 그 말을 듣고 토마시는 야릇한 우울함에 빠졌더랬다. 테레자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가능성의 왕국에는 토마시와 이루어진 사랑 외에도 실현되지 않은 다른 남자와의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2..
편지 -이성복- 편지 -이성복-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 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안녕. 오늘 안으로 나는 기억을 버릴 거에요.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요. 나는 선생이 될거요. 될 거라고 믿어요. 사실, 난 아무것도 가르칠게 없고 내가 가르치면 세상이 속아요. 창피하오.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1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혼자인 것만이 아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이다. 그는 이방인이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쓰쿠루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그가 일본에서 늘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고립감이었다. 이거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하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고립의 이중 부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방인인 그가 여기서 고립된다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일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신은 정말 올바른 장소에 있는 것이다. 2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죠'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쓰쿠루는 와인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남에게 설명..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1 우리는(우리란 정상인과 비정상적인 사람을 다 포함한 총칭이에요)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에요. 자로 깊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나갈 순 없어요. 안 그래요? 나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미도리라는 여자는 매우 멋있는 여자인 것 같아요. 와타나베가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것은 편지만 봐도 잘 알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나오코에게도 마음이 끌린다는 것도 잘 알겠어요. 그런 건 죄도 아무것도 아니죠. 이 드넓은 세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까! 날씨가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고,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