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책읽기/밑줄긋기 (164) 썸네일형 리스트형 미야베 미유키 『화차』 1 저마다 심하게 배신당한 양 큰 소리로 불평을 쏟아놓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저녁 무렵부터 내리다가 한밤중에 그쳐버리고, 아침에는 스르르 녹아내리는 눈을 절대 용서하기 힘들 것이다. 한껏 들뜨게 해놓고 매번 약속을 어기는 거짓말쟁이 여자나 다를 바 없다. 모처럼 신나게 놀고 싶었는데. 2 인간은 새것을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대상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새로 바꿀 수 있는 것을 고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3 분노는 사람이 웅변을 쏟아놓게 만들기 때문이다. 4 뱀이 탈피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목숨 걸고 몇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에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가네시로 가즈키 『Revolution No.3』 1 "클리포드 브라운은 스물다섯 살에 죽었지. 소울(Soul)이 너무 강했던 거야. 소울이 강한 인간은 신의 레이더에 걸리기 쉽거든. 신은 그런 인간을 곁에 두고 싶어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소울이 너무 강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가버린다니까." 2 "어젯밤 내내 생각하다가 인간을 불신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뒀어. 게다가 자기를 원망할 만한 사람을 어떻게 알겠어. 원망이란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잖아. 타인이 나를 무슨 이유 때문에 원망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고." 옳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원한이나 원망에는 집착하지만 타인의 원한에는 둔감한 법이다. 박완서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신곡이나 파우스트는 그런 맹목적 사명감이 아니었더라면 도저히 못 읽겠는, 난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읽은 걸 결코 잘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 하고 하여튼 읽긴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는 안 읽었고, 누가 그런 걸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알고 그럴까 열등감 반 의심 반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2 그건 결코 연애감정을 뜻하는게 아니다. 이성간에만 있는 것이면서도 연애감정 이전의 이끌림이 남자와 여자가 섞여서 하는 일 가운데는 반드시 있는 법이.. 베르나르 베르베르『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1 거울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상을 찾는다. 처음에는 부모의 시선에서, 그다음에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다가 우리는 자신의 참모습을 비춰 줄 하나뿐인 거울을 찾아 나선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의 발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자신의 만족스러운 상을 비춰주는 거울을 찾아냈을 때 흔히 첫눈에 반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시선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평행한 두 거울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상을 비춰 주는 마법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거울 두 개를 마주 보게 놓으면 거울 속에 거울이 비치면서 같은 이미지가 무수히 생겨난 것에 비유.. 김애란『두근두근 내 인생』 1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2 진짜 두려움의 근원은 따로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그걸 몰랐지만. 그것은 한 존재를 향한 거대한 사랑의 예감, 그 그림자 속에 드리워진 불안, 그리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 어느 칸에 넣는 것이 적절한지 알 수 없는 기분 때문이었다. 3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나오는' 거란 걸 어머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렴 시골에서 자랐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어머니가 본 꽃은, .. 할레드 호세이니『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대의 비밀을 바람한테 얘기하라. 하지만 그걸 나무한테 얘기했다고 바람을 탓하진 마라 더글라스 케네디『위험한 관계』 1 마취제 때문에 한동안 삶에서 밀려나는 기분은 정말 기이했다. 마취 당하면 꿈을 꾸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도 딱히 의식되지 않고 공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마취상태에서는 여러 생각, 두려움, 근심 따위가 마음을 침범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이 쉽게 스며드는 상태인 수면과는 달리, 마취 상태에서는 화학적인 활기만 유지될 뿐이다. 2 망할 놈의 책과 잡지마다 모유 수유가 삶을 고양시키는 즐거움을 준다고 나와 있었다. 모자 관계를 단단히 연결해주고, 깊은 모성애를 불러일그킨다고. 모유 수유를 찬성하는 글의 주제는 하나갚이 '모유가 최고' 였다. 그런 글들은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이며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라 치부했다. 내가 바로 그런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모유 수유가 '이가 갈리게.. 박준『책여행책』 1 여행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어 떠났다가 일상이 그리워 돌아오는 것이라지만, 그 그리움은 일상에서 벗어나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2 "신은 아마도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러니까 창조력이 완전히 바닥났을 때 러시아 평원을 만들었을 거야. 위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때론 유명한 구경거리라곤 하나도 못 본 여행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도 있어. 가끔 러시아 평원은 훌륭한 풍경화야. 하얗게 꽃이 만발한 감자밭, 짙푸른 언덕과 초원, 평원을 레이스커튼처럼 둘러싸고 있는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둥치 빛깔이 검고 흰 두 가지밖에 없는게 심심하긴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르게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이상하다. "난 야간열차를 타고 달리는게 기뻐. 벵골어로는 어..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