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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베르나르 베르베르『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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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울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상을 찾는다.
처음에는 부모의 시선에서, 그다음에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다가 우리는 자신의 참모습을 비춰 줄 하나뿐인 거울을 찾아 나선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좋은 거울>의 발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자신의 만족스러운 상을 비춰주는 거울을 찾아냈을 때 흔히 첫눈에 반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시선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평행한 두 거울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상을 비춰 주는 마법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거울 두 개를 마주 보게 놓으면 거울 속에 거울이 비치면서 같은 이미지가 무수히 생겨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듯이 <좋은 거울>을 찾아내면 우리는 다수의 존재로 바뀌고 우리에게 무한한 지평이 열린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주 강하고 영원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거울은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다. 두 연인은 자라고 성숙하고 진보한다.
그들은 처음에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동안 서로 나란한 길을 따라 나아간다 해도, 두 사람이 반드시 똑같은 속도로 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아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두 사람이 상대의 시선에서 언제나 똑같은 자신의 상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면 결별이 찾아온다.
나를 비춰 주던 거울이 내 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건 사랑 이야기의 종말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시선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2
가이아의 대답

사람들은 오랫동안 왜 메뚜기들이 수백만 마리씩 떼를 지어 구름처럼 몰려다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현상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단일 경작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이다.
광대한 농경지에 한 가지 작물만 심다 보니 그 작물의 천적이 한 지역으로 몰려들게 되고
그럼으로써 기하급수적으로 개채 수가 불어난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관여하기 전만 해도 메뚜기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별로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드리 자연을 변화시키고 싶어 했던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메뚜기들이
저희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반응을 보였다.

인간이 땅거죽에서 핵폭탄을 터트리면 가이아는 지진으로 대답한다.
인간이 지구의 검은 피인 석유를 유독 가스로 변화시켜 생명을 질식시키는 구름을 만들어 내면
지구는 기온 상승으로 응답한다.
그리고 나면 빙하가 녹고 홍수가 일어난다.

인간은 자기들이 지구를 상대로 도발을 할 때마다 지구가 응답한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이른바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재해라고 말하는 것들은 인간이 어머니인 지구와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인재일 뿐이다.



3
페리숑 씨의 콤플렉스

19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외젠 라비슈는 [페리숑 씨의 여행]이라는 희극 작품에서
인간의 묘한 심리를 드러내는 한 가지 행동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일견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알고 보면 사람들에게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행동,
바로 배은망덕이다.

파리의 부르주아 페리숑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알프스로 여행을 떠난다.
딸에게 반한 두 젊은이 아르망과 다니엘도 딸에게 청혼할 기회를 얻기 위해 페리숑 씨 가족과 동행한다.
일행이 <얼음 바다>라 불리는 알프스 빙하 근처의 한 산장 여관에 묵고 있던 어느 날,
페리숑 씨는 승마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진다.
바로 옆에 낭떠러지가 있다.
그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있는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아르망이 달려들어 그를 구해 준다.
아르망에 대한 딸과 아내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은혜를 입은 페리숑씨의 태도는 다르다.
처음엔 생명의 은인에게 기꺼이 고마움을 표시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도움을 과소평가하려고 애쓴다.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전나무를 보고 막 붙잡으려던 참인데 아르망이 온 것이고,
설령 아래로 떨어졌다 해도 멀쩡했을 거라는 식이다.

이튼날 페리숑 씨는 두 번째 젊은이 다니엘과 함께 가이드를 따라 몽블랑 아래의 빙하 쪽으로 트레킹을 나간다.
도중에 다니엘은 발을 헛디뎌 크레바스로 추락할 위기를 맞는다.
이때 페리숑 씨가 피켈을 내밀어 잡게 하고 가이드와 함께 그를 끌어낸다.
산장으로 돌아온 페리숑 씨는 딸과 아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그 일을 떠벌린다.
다니엘은 페리숑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기는 죽었을 거라면서 아낌없는 찬사로 그를 거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페리숑 씨는 아르망보다 다니엘에게 관심을 갖도록 딸을 부추긴다.
그가 보기에 다니엘은 무척이나 호감이 가는 젊은이다.
반면에 아르망이 자기를 도와준 일은 갈수록 불필요했던 일로만 여겨진다.
급기야는 아르망이 자기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조차 의심하기에 이른다.

외젠 라비슈가 이 희극을 통해 예증하듯이,
세상에는 남에게 은혜를 입거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고마움을 모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을 미워하는 자들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도와준 사람들에게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와준 사람들을 좋아한다.
우리의 선행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들이 두고두고 감사하리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4
생일 케이크

생일 때마다 촛불을 밝히고 불어 끄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아주 잘 드러내는 의식 가운데 하나다.
그 의식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가 불을 일으킬 수도 있고,
입김을 불어 끌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환기시킨다.
불을 제어하는 것은 아기가 책임 있는 존재로 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 중의 하나다.
반대로 노인이 되어 촛불을 불어 끄기가 어려울 만큼 숨이 딸리는 것은
이제 활동하는 인구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될 때가 되었음을 뜻한다.

 

5
애도의 중요성에 관하여

오늘날에는 상례가 사라져 가는 경향이 있다.
가족 중의 누가 세상을 떠난 경우에도 사람들은 장례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평소의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 갈수록 덜 심각한 사건이 되어 간다.
검은색은 전형적인 상복의 색깔이라는 특권을 상실했다.
디자이너들은 검은색이 사람을 날씬해 보이게 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개나 소나 시도 때도 없이 검은색 옷을 입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떤 시기의 종말이나 어떤 존재의 소멸을 애도하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안정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른바 원시 사회라 불리는 사회에서만은 여전히 애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예컨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활동을 중단하고 애도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장례식을 두 차례에 걸쳐 치른다.
첫 번째 장례식 때에는 모두가 슬퍼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시신을 땅에 묻는다.
그런 다음,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두 번째 장례식을 치르면서 대대적인 축제를 벌인다.

비단 사람이 죽었을 때뿐만 아니라,
어떤 직장이나 삶의 터전을 떠날 때처럼 <종결의 사건>이 있는 경우에도 애도는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애도는 일종의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대개는 이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이것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의 단계를 표시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애도 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르고 있던 콧수염을 밀어 버리거나 머리 모양을 바꾸거나 복장의 유형을 바꾸는 것과 같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부터,
걸판지게 잔치를 벌이거나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마시거나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다소 격렬한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의식이 있을 수 있다.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잡초의 뿌리를 제대로 뽑아 내지 않은 것처럼 사건의 후유증이 오래간다.
어쩌면 학교에서도 애도의 중요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중에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몇 년씩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게 말이다.



6
노인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음조차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 아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7
인간의 정의

사지가 온전히 발육한 6개월 된 태아는 이미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3개월 된 태아도 사람인가?
갓 수정을 끝낸 난자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6개월 전부터 혼수 상태에 빠진 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환자, 그
렇지만 여전히 심장이 뛰고 허파로 숨을 들이고 내는 식물인간도 여전히 사람인가?
사람의 몸에서 분리되어 영양액 속에 담긴 살아있는 뇌는 사람인가?
인간의 사고 작용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컴퓨터도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사람과 똑같은 겉모습에 사람의 뇌와 비슷한 뇌를 가진 로봇은 사람인가?
사람의 신체 기관에 생길지도 모를 결함에 대비해서,
대체 장기들을 미리 마련해 둘 목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 낸 복제 인간은 사람인가?
그 어떤 물음에도 분명하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의 뜻매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물론이고 중세까지도 여자와 오랑캐와 노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입법자들에겐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사람이 아닌지를 가려낼 의무가 있다.
그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서는 생물학자, 철학자, 정보 공학자, 유전 공학자, 종교인, 시인, 물리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리라.
<사람>이라는 말을 정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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