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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박준『책여행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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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어 떠났다가 일상이 그리워 돌아오는 것이라지만,
그 그리움은 일상에서 벗어나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2
"신은 아마도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러니까 창조력이 완전히 바닥났을 때 러시아 평원을 만들었을 거야.
위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때론 유명한 구경거리라곤 하나도 못 본 여행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도 있어.
가끔 러시아 평원은 훌륭한 풍경화야.
하얗게 꽃이 만발한 감자밭, 짙푸른 언덕과 초원, 평원을 레이스커튼처럼 둘러싸고 있는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둥치 빛깔이 검고 흰 두 가지밖에 없는게 심심하긴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르게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이상하다.

"난 야간열차를 타고 달리는게 기뻐. 벵골어로는 어제와 내일을 가리키는 말이 똑같다는 거 알아?
지금처럼 철로 위에선 현재가 과거나 미래와 똑같은 간격을 둔 채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잖아.
일상적인 시간관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시간이랄까. 난 그 시간을 즐기려고 해."


3
"잠 다 자고 보낸 1년보다 잠 못 이루고 보낸 하룻밤 사이에 배우는게 더 많아.
에밀 시오랑이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했어.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카프카는 소설 <판결>을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써내려갔다고 해.
정말 대단하지 않아?
아무리 카프카라고 해도 대낮에 그런 식으로 쓰진 못했을 거야.
밤의 마력인 거지."


4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쌀알이 바늘 끝에 얹히는 것만큼이나 어렵단다, 얘야.
그래서 사람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그토록 소중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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