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마니또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고르다가 김영하 작가의 신간이 나왔길래 집어 들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김영하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김영하 작가의 책은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명의 작가가 쓴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만큼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들~~~
*** 여기서부터 스포 남발 ***
이번 그의 소설의 배경은 미래다.
자신이 AI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던 철이와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선이
그리고 자식으로 입양되었지만 결국 인형에 불과했던 민이
안온한 삶을 살던 철이가 수용소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겪는 일들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자세하지는 않았다.
작정하면 두배의 분량으로 늘리고도 남았을텐데 작가는 작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스토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념을 더 중히 여긴 소설이라고나 할까.....
철이가 겪은 고난들에 대해 장황하게 묘사하기보다
철이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 것 같았다.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가 꿈꿔왔고 기대하는 것들.....그것들이 이루어졌을 때의 혼란
특히 선이와 달마의 대화 부분이 정말 인상깊었다.
의식이 그 사람을 규정짓는다면 식물인간은?
아니면 의식은 그의 것이지만 신체는 모두 바뀐 사람은?
실체는 없고 데이터만으로 존재하는 AI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렇게 몸의 부분부분을 교체해 나가다 결국 모두 바뀌는 상황이 되었을때
그것은 과연 나인가, 아닌가....
그렇게까지 해서 사는 그 영생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또한 필요에 의해서 얻고 그렇지 않은 경우 간단히 내쳐버리는 일들....
인간에게 하는게 아니니까~~~라는 변명, 멀리 갈 것도 없다.
현대의 사람들이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녀석들에게 행하는 행동들.....
앞으로 우리가 의식과 감정을 가진 AI에게 하고도 남을 일들일 것이다.
어렸을 때 결국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하게 되는 SF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저 저런 일이 닥치면 어떨까~~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는 순간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계인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도 인상깊다.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오~~~
신기한 건 소설을 읽던 중간에 '정이' 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도 본인이 AI인 줄 모르는 AI가 나온다는 거다.
우연일까, 트렌드일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게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하고 쓴 소설인 것 같았고,
나 역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숙고하면서 읽어보고 싶다.
(음주 리뷰라 두서가 없다 ㅋㅋ)
"그게 만약 잘못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외동이면 외로우니까 하나를 더 낳아주자.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죠.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이나 집을 주니까 낳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기심이죠. 생각해보세요.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2024년 1월, 1년 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야 읽었네~
다시 읽어도 또 재미있는 책이고, 한번 더 읽으니 더 와닿는 부분이 많은 소설이다.
AI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세상에 살다보니 뭔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구절이 많았다.
김영하 작가님 천재~~
아! 그리고 첫번째로 읽었을 때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기억나지 않던 주인공들의 결말....
민이는 달마의 아지트를 습격한 로봇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아빠인 최박사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삶을 살던 철이는 선이의 흔적을 찾게 되고,
달마의 도움으로 원래 몸과 같은 모습으로 선이를 찾아가 함께 산다.
클론으로 태어난 선이는 아픈 곳이 많았고, 마을의 정신적 지주 같은 인물로 살다 죽는다.
그리고......휴머노이드였던 철이는 가장 휴머노이드답지 못한 모습으로, 곰에게 물려 죽는다.
1
어른들은 아이들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2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3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수용소 쪽을 돌아보며 조금 머뭇거렸는데,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도 잘 납득이 안되지만, 분명 그리움과 비슷한 어떤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용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휴먼매터스 말고 처음으로 오래 살아본 곳이고, 연구원들이 아닌 존재들, 나와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존재들과 마주했던 곳이다. 나는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 날마다 소소한 노력들을 했고, 작고 불안정하지만 내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거기 들인 노력과 시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게 조금은 갑작스럽고 아쉬웠던 것 같다. 다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보니 그저 익숙한 것이 더 나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4
"우리가 왜 그래야 할까요?"
달마가 민이의 머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질문의 의도를 가늠하기 위해 선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억울하게 죽었으니까요."
"그럼 만약 정해진 수명을 다하고 비활성화되었다면 그대로 받아들였을까요?"
"어쩌면요. 그런 경우라면 타고난 운명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다시 활성화된 이 휴머노이드가 과연 여러분에게 고마워 할까요?"
"그럼요.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으니까요. 죽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거든요."
"생존 본능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이 휴머노이드에게 애초에 선택권이 있었다면 애완용 휴머노이드로 태어나겠다고 결정했을까요?"
선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었을 거예요. 민이의 짧은 삶은 고통뿐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활성화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시 살아난다 해도 이 휴머노이드에게는 별로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은 당신의 말입니다. 아마 죄책감은 잠시 줄어들겠지요. 이 휴머노이드가 다시 살아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휴머노이드도 당신들을 다시 보게 되면 반가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이 휴머노이드를 위한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이 휴머노이드가 앞으로 어떤 고통을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요."
나는 그렇게 선이를 다그치는 달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든 살릴 수 있으면 살리는 게 맞잖아요. 안 그래요? 그럼 인간들은 왜 다치면 모두 당연하게 응급실로 가죠? 왜 의사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 같은 환자들만 살리지 않고 전부 다 살리려고 애쓰죠?"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입해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것은 또 아닙니다. 인류가 벌인 그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보십시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지금 한 휴머노이드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이 휴머노이드를 재활성화, 아니 여러분의 표현대로 살리는 것이 정말 이 휴머노이드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여러분이 확신하느냐는 것입니다.
선이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달마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테니까요."
"살면서 느끼는 기쁨도 있지 않아요?"
나는 달마에게 물었다.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그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5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고모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너의 장기를 이식할 생각이었잖아? 애당초 클론은 그런 목적으로 생산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그럼 말이야. 예를 들어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민이는 예전의 그 민이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일까? 팔도 교체할 수 있고, 다리도 교체할 수 있고,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그렇지. 뇌가 그 경계일 거야. 의식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그렇다면 민이는 그대로 민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의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이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6
내 삶의 모든 기록이 거기 있었다. 이제 한 번 쓰인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클라우드로 올라간 것들은 그대로 거기 머문다. 이 디지털 구름은 끝없이 형태를 바꾸며 영원히 존재한다. 수십억 대의 카메라가 전세계에서 모든 것을 찍어 어디론가 전송한다. 그리고 백업한다. 그 어떤 권능과 기술도 이 모든 것을 일거에 삭제할 수 없다. 21세기 모든 인간의 삶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그 어딘가에 뭉게뭉게 피어 있었다.
7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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