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은 무엇이든 적극적인 자가 남들로 하여금 그들 흉내를 내게 하도록 되어 있다.
2
인간은 옛날부터 멍청이다.
그러므로 겨우 최근에 이르러서야 운동의 효능을 선전하거나 해수욕의 이점을 떠들어대며 무슨 큰 발명이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나 같은 고양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다른 건 두고라도 바닷물이 왜 약이 되는가 하는 건 잠깐 바다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 넓은 바다에 물고기가 몇 마리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많은 물고기 중에 병들어서 의사의 치료를 받은 예는 단 한 마리도 없다.
모두 다 건강하게 헤엄치고 있다.
병에 걸리면 몸이 말을 안 듣게 된다.
죽으면 반드시 물 위에 뜬다.
그러므로 물고기의 왕생을 '뜨다' 라고 하고, 생의 훙거를 '떨어지다' 라고 외치며, 인간의 적멸을 '죽다' 라고 일컫는다.
서양 여행을 하다 인도양을 횡단한 사람에게 물고기가 죽는 걸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봐라.
그러면 누구나 다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다를 왕복한들 단 한 마리도 파도 위에 막 숨을 거두고-숨이라고 하면 안되지. 물고기니까 물을 거뒀다고 해야겠지-
물을 거두고 떠 있는 걸 본 자는 없기 때문이다.
저 망망대해를 밤낮으로 계속해서 석탄을 때며 찾아다녀도 예부터 지금까지 물고기가 단 한 마리도 떠오르지 않은 사실로 추론해보면,
물고기는 엄청 튼튼한 동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쉽게 단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물고기가 어떻게 그렇게 튼튼한가 하면 이 또한 인간에게 물어봤자 모르는 일로, 아주 명백하다.
오로지 바닷물만 삼키고 언제나 해수욕을 하기 때문이다.
해수욕의 효능은 그렇게 물고기에게 있어서 현저하다.
물고기에게 있어서 현저한 이상 인간에게 있어서도 현저하지 않을 리 없다.
1750년에 영국의 의사 리처드 러셀이 브라이튼 바닷물에 뛰어들면 404가지 병이 즉시 완쾌된다고 요란하게 광고를 낸 것은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고 비웃을 만하다.
고양이긴 하지만 적당한 시기가 오면 모두 함께 가마쿠라 해안 근처 어딘가로 나갈 작정이다.
단, 지금은 안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유신 전의 일본인이 해수욕의 효능을 맛보지 못하고 죽은 것과 같이, 오늘날의 고양이는 아직 알몸으로 바닷속에 뛰어들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오늘날같이 매립지에 버려지러 간 고양이가 무사히 돌아오기 전에는 무턱대고 뛰어들 순 없는 노릇이다.
진화의 법칙으로 우리 고양이들에게 광란노도에 대한 적당한 저항력이 생기기 전까지는-바꿔 말하자면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지 않고
고양이가 '떴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까지는-쉽게 해수욕은 할 수 없다.
'좋은책읽기 >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0) | 2015.09.15 |
---|---|
리안 모리아티 『허즈번드 시크릿』 (0) | 2015.07.29 |
공지영 『별들의 들판』 (0) | 2015.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