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시인이었던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
과거의 회상은 현재의 처지가 어떠냐에 따라 흐뭇하게도 남루하게도 다가오는 거니까.
3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신자들의 결혼에 대한 가지가지의 고해를 들으면 말해주었지.
용서하라고, 사랑했던 때를 생각하라고....
그런데 자기가 결혼생활을 해보니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상대가 바로 배우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만일 다시 신부가 되어 고해를 듣는다면 절대로 예전처럼 쉽게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못할거라고,
그러면 그건 거짓이고 위선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제들이 왜 독신이어야 하는지 알 거 같다고 하셨대요.
결코 별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별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별을 가리킬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자는
오직 독신들뿐이라고.
4
함께 자는 것, 총을 사는 것, 만져보는 것, 악착같이 돈을 버는 것도 어쩌면 사랑이겠구나, 하고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포옹하지 않고, 섹스하지 않고, 움켜쥔 것을 놓고, 열쇠를 던져버리는 것이 때로는 그럴 수 있듯이.
5
힘겹다 해도 젊다는 것은, 힘겹지 않아도 늙은 시간보다 반추하기에 즐거운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6
이런 경우 먼저 상대방이 싫어진 사람이, 아직 상대방이 싫어지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룰을 지킨 사람이 궁지에 몰려 벌을 받는 유일한 게임, 그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7
그러나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죠.
결혼은 우리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 남들도 그러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그때,
마침 내 앞에 애인 없이 나타난 상대방과 하게 되는 거니까.
그러고 나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우린 그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거, 그게 보통의 룰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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