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한글 제목만 보고 X 인줄 알았다.
어? 근데 보니 '엑스' 가 아니라 '액스' 도끼네?
한국 사람들은 해고 당했다는 표현을 할 때 잘렸다고 하는데,
미국인들은 도끼로 내리찍는다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제목이 '도끼'가 되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 없다'를 보고 원작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미 영화를 봤으므로 뭐 딱히 원작을 읽어보고 싶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내 손에 책이 들어와 있네? 그래서 걍 읽었다 ㅋ
영화는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지만 그렇다고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다.
전체적인 주제, 배경, 인물들은 가져가고
일의 순서나 디테일은 이래저래 각색을 많이 했더군.
잔인한 연쇄살인 이야기 일 수 있는 내용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소설, 그리고 영화.
영화를 보고 그 생각을 했었는데, 소설을 읽고도 비슷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어쩔수가 없다'
제목이 참.....공감이 가면서도 공감할 수 없다능~~~
요즘 진짜 나이 들었음과 현대인의 질병에 물들어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한번 잡으면 장시간 읽고 앉아 있지를 못하겠다는 것.
시력과 집중력 저하를 절실히 느끼며 더불어 어쩐지 서글퍼진다.
밤새 책을 읽던 그때의 나는.....어렸던가, 디바이스의 공격이 없어서 였던가!!
1
장기간의 실직 상태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해고된 직원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중산층에 가해지는 타격이 특히 크다는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산층의 입장에서는 (나는 아직도 중산층에 남기 위해 바둥거리는 중이다) 우리가 최대 피해자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부자인 사람들은 인생에 극단적인 굴곡이 많다는 걸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좋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도 있는 법.
하지만 우리 중산층은 인생의 매끄러운 진행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고소득 계층으로의 진입을 포기했으니 우리를 밑바닥으로 내몰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 충성했으니 우리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우리 중산층은 가운데에 껴서 보호받고 지켜져야 하지만 무언가가 잘못돼버렸다.
가난한 이가 형편없는 일자리를 읽게 되면 그냥 사회복지 수당을 받아 살면 된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다.
백만장자가 무모하게 벤처 기업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미끄러지면 그 여파는 몇 개월, 아니, 몇 년 넘게 이어진다.
심한 경우에는 한때 마음껏 누렸던 경제적인 능력과 안전과 자부심을 영영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 처참하게 내팽개쳐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내팽개쳐진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탈선하고(다행히 우리는 아직 그런 문제가 없지만), 결혼 생활도 파탄 난다.
2
하지만 요지는 그게 아니에요.
요지는, 집에선 행복해지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거예요.
누구나 세상 어딘가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하잖아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필요해요.
마음을 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상대 말이에요.
같이 울 수도 있고.
하지만 버크는 너무...... 남편의 무드는 항상 극저온이었어요.
얼음덩어리 같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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