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책읽기/2024년

박범신『당신』

728x90
728x90

 

 

한참 히말라야에 꽂혀있던 시절, 우연히 읽게 된 촐라체 덕에 알게 된 박범신 작가

촐라체를 시작으로 고산자, 은교, 소금, 소소한 풍경, 비즈니스 그리고 당신

벌써 일곱권째네.

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은 후에 든 생각은......

역시 박범신......

 

되게 은유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 적나라한 문장

때로는 굉장히 시적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누가봐도 무심한 남자가 쓴 글처럼 사무적일 때도 있고.....

처음엔 줄거리가 간단한 것 같지만 읽다보면 얼기설기 엮여 있는 사건과 시간들

내가 박범신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책 소개글을 대충 보니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내용인 것 같았고

잠시 고민을 하긴 했었다. 너무 슬프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정확히는 아빠 생각이 너무 나면 어쩌지....였었는데........뭐지. 읽다보니 내내 엉뚱한 사람 생각이 났다.

 

먼 산을 바라보며 이상을 좇는 가인오빠, 그 가인오빠만을 바라보며 사는 나, 희옥

어릴 때 일순간 홀려 평생을 희옥만 바라보고 산 주호백

(구도가 참 ㅋㅋ 나이가 어린 것도 그렇고, 왜 또 하필 주씨야 ㅋ 그가 지킨 영원은 또 뭐고....쿨럭~)

그리고 이들 셋의 딸 인혜

 

주호백의 구구절절한 사랑이나, 뒤늦게야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하는 희옥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 왔었는데......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구의 증명이 생각났다. 헛!

뭐지 싶어서 두 책의 출간일도 찾아봤네.

뭐 전혀 상관없이 씌여진 두 책이겠지만, 놀랍게도 출간년도가 같더군. 소름~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고, 박범신 작가의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가독성이 넘 좋아서

사흘만에 후다닥 읽어버리고 아쉬워 하는 중이다. 쩝~

 


 

1

그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일기는 이렇다.

"여기, 내 관 속 같아요, 당신!  너무 추억이 많은 집인데. 당신, 언제든 여기 올라오면 창 너머 좀 봐요. 오래오래. 여기에서 보는 풍경은 봄이 제일이지요. 봄이면 저 숲 어디에 내가 와 있는 줄 아시오. 아니. 당신 가슴속을 좀 들여다보구려. 평생에 걸쳐, 거기,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진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 아이고, 그 집이 무거워지면 당신, 무슨 수로 걷고 춤츨 수 있겠소. 당신은 춤출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2

그를 보내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죽어가는dying'이란 말은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어법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정작 죽어가는 사람은 죽어간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죽어가는 사람'이란 말을 나와 아무 상관없는 특정한 어떤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하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이었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죽어가면서도 그는 '다음에'라는 말을 늘 사용했다. 약을 먹기 싫을 때도 그랬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도 그랬고 검사를 위한 갖가지 기구 속으로 몸이 이끌려 들어갈 때도 그랬다.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라고 그는 말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이르는 말,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많이 가져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라, 사랑한다, 미안한다, 용서한다고 말하라, 유언장을 작성하라, 당신 대신 중요한 일을 결정할 사람을 정해두라, 하는 식의 조언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죽어가는 사람도 죽어가는 사람의 구경꾼 위치에 서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3

"사랑으로 간병하면 대개의 치매 환자가 양순해져요. 스킨십이 최고의 치료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행복하다 느끼면 과거에서도 주로 행복한 기억들만을 찾아 데려오는가봐요. 완치시키긴 어렵지만, 덜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믿어요."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