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책읽기/2024년

김영하『퀴즈쇼』

728x90
728x90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책을 다섯권이나 읽었으니~

그런데 알고보니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 다섯권 외엔 그에 책에 대해 아는게 없다는걸 이제야 알게 됨.

중고서점을 기웃거리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보고 그냥 집어 들었다. 처음보는 제목이었다.

사실 제목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크게 상관이 없을 것도 같았다.

 

나에게 있어 소설은 줄거리나 가독성 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게 문체인데,

그 '문체' 때문에 믿고 보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젊은 시절 쓴 책들의 문체가 아주 유려하고 현란하다.

걸작이라 추앙받는 외국 소설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대부분 '주절거린다'인데, 이 작가들은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말에서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장을 최대한 자기만의 색깔로 표현한다고 해야 하나.

작가가 책을 집필할 때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꼭 신들린 것처럼 손가락이 미친듯이 움직일 것 같다.

(실제로 그 작가는 한줄한줄 심사숙고해서 썼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이유는........읽는 내내 작가님의 문체가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초판 발행일을 보니 2007년....17년 전에 쓴....그러니까 김영하 작가가 젊은 시절 쓴 책....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뭔가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활용하여 써 낸 유려한 문장~~이라는 느낌?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 자체가 재미있고 신박했다는 뜻이다.

 

사실 줄거리는 좀 황당한 부분도 많다.

지원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그랬고, 신기루와 같은 '회사'라는 곳에 대한 것도 그랬다.

퀴즈라는 소재가 그 둘을 연결해주는 듯하지만 어찌보면 전혀 뜬금없기도 하고....

그래서 대체 거기는 어디란 말인가~~~

땡전 한 푼 없는 민수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내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재미있기도 했다.

어쨌거나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삶은 내가 살아보질 않아서......

진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싶다.

 

진짜 그런 것 같다.

20대는 젊고 건강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불안하다.

나이가 들면 열정도 많이 사그라들고 건강도 예전같지 않고 외모도 늙어가지만,

오히려 20대 때보다 지금이 좋다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또래지만, 어쨌거나 20대니까~~~

이 시대의 젊은이들!! 민수처럼 살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기를 ^^

 


 

1

채팅을 하며 우리는 우리의 말과 사랑에 빠진다.

우리의 말, 우리를 대신하여 화면 위로 떠오른 문장들.

그 문장이 불러온 또다른 문장.

나의 문장은 너의 문장을 만나 그 다음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 문장은 다시 예기치 않은 새로운 문장으로 몸을 바꾼다.

아, 내 몸을 떠나 생명을 얻은 저 말들, 또 그 말과 말들의 사랑.

그것은 육신의 사랑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이고, 허무를 남기지 않는다.

 

2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어둠은 산야의 어둠과 달랐다.

어쩔 수 없이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퇴각한다는 식이 아니라 어둠이 빛 사이로 몰려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골에서처럼 어둠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세상을 덮는 게 아니라

발목을 적시면서 무릎부터 차올라 어느새 세상이 그 어둠 속에 잠겨드는 것이다.

 

3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4

나는 옆방녀의 옆방에 살던 남자야.

살아모녀서 했던 말장난 중에서 가장 쓸쓸한 말장난이었다.

 

728x90
728x90

'좋은책읽기 > 202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수,문정『1cm 다이빙』  (0) 2024.02.24
엘런 L. 워커『아이 없는 완전한 삶』  (1) 2024.02.12
한강『소년이 온다』  (3)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