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의 다음 이야기
주인공 문지혁이 한국으로 돌아와 글쓰기 강사로 일하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해서 모두 고소득 교수님이 아니라는 뼈아픈 사실,
아이가 잘 생기지 않을 때 부부가 하는 고민, 갈등들.....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기쁨이나 어려움 등에 대해서........
예전에 비해서 책을 내기가 훨씬 수월해졌지만,
그래서 어쩐지 다들 나도 책 한 권쯤 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책을 냈다고 해서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
몇 십년 후에 읽는다면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할 코로나 시국의 우리들....
뭐 그런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들을 재미있게 풀어낸 소설이다.
엄청난 임팩트는 없지만 읽는 내내 공감가는, 게다가 가독성도 좋은 책이다.
재미있게 읽었고, 고급 한국어를 기다리는 독자에 포함되기로 했다.
(그런데 진짜로.....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1
나는 그것이 내 아이의 첫 울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메모 앱을 열어 아이가 세상에 온 시간과 날짜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리어왕」의 대사,
"우리가 태어날 때 우는 건 바보들의 거대한 무대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야."를
이어서 급하게 타이핑하려는 순간, 논앞의 '내일과 소망'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2
"원해? 원하지 않아?"
은혜가 나를 바라봤다.
이게 원한다고 되고, 원치 않는다고 안 되는 일인가? 그렇게 대답할 수 있나?
아이를 '갖는다'고? 아이가 우리의 소유물인가?
신형 아이패드나 구스다운 패딩을 사는 것처럼 '갖고 싶을 수 있는' 대상인가?
3
만약 인생이 놀이공원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건 거대한 롤러코스터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안 타면 중요한 경험 하나를 놓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놀이 기구를 다 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혹시 이 기억은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사진을 토대로 내가 사후에 만들어 낸 것이지는 않을까?
인간의 기억은 결코 영화나 드라마처럼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지 않다.
기억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며, 인적 없는 낯선 도로이고,
오직 손과 발을 사용해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자에게만 다음 길을 보여 주는 어둠 속 미로다.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창조이며, 따라서 우리의 과거는 허구 위에 지은 집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한다.
5
그때 나는 엄마보다 그 아이를 더 좋아했으므로, 그 애 말대로 했다.
(참고로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사귀고 대학에 가면서 헤어졌다.
나는 '사귄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그 애와 나는 손 한 번 잡아 보지 않은 채
천 일 동안의 길고도 짧은 연애를 마감했다.
이 얘기는 은혜도 잘 알고 있는데, 그녀는 그 애와 나의 연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니넨 그냥 친구로 사귄 거네."
아니, 플라토닉러브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6
시간만 여러 차원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는 깊은 강 같아서, 표면에서 흐르는 것과 바닥에서 흐르는 것이 다르다.
빙산의 일각처럼 텍스트 밑에는 언제나 서브텍스트가 잠겨 있고,
그러나는 것은 (헤밍웨이의 말에 따르면) 8분의 1에 불과하다.
양말을 뒤집어서 벗어 놓는다는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표면과 이면을 혼동했거나 물속 깊이 잠겨 있는 8분의 7을 보지 못한 결과다.
7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는 '평온의 기도;로 알려진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분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8
「체이싱 유」의 처참한 실패 이후 나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첫 책을 내기 전 나는 책을 내면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거나, 아니면 기분이라도 좋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내고 경험한 것은 절대적인 무관심과 투입한 시간 대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제적 보상
(정가 1만 3000원의 초판 2000부 발행에 따른 10% 인세 250만 원에서 계약금 100만 원을 뺀 160만 원)과
약간의 악의뿐이었다.("조잡하고 애매하며 무엇보다 더럽게 재미가 없습니다....")
9
"난 솔직히 걱정된다. 니가 책 낸 사람이 될까 봐."
솔직히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지? 난 이제 책 낸 사람이 될 건데?
그가 말한 '책 낸 사람'이 '작가'의 반대편에 있는 멸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적어도 그의 시계에서, 책을 낸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닌 것이다.
제대로 등단해서,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제대로 된 작품(아마도 장르문학은 아닐)을 내지 않는 사람은
책을 낸다 하더라도 작가가 아닌 책 낸 사람에 머문다.
책 낸 사람과 작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10
소설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다고요? 뭐가 소설인지 모르겠다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진짜 좋은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영업 비밀이긴 한데.......
일단 아무거나 쓰고, 그걸 소설이라고 우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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