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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삶/영어공부

Crying in H mart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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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Dark Matter

나는 이것을 그동안 내가 한 잘못들을 고칠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있지 않기를 원한게 미안할 정도로 엄마를 위해 여러가지를 해주고 싶었고, 완벽한 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은 휴스톤에 가서 MD앤더슨을 만났고, 엄마는 췌장암이 아니라 담낭 근처에서 희귀한 상피성 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집에가서 Molotov cocktail 의 반응을 본 후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방사선 치료를 하자고 했다. 엄마는 암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했다. 유진으로 돌아온 후 엄마는 10년간 했던 긴생머리를 픽시컷으로 자른 사진을 보냈고, 나는 어려보인다며 열광했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고하고 나는 일을 그만뒀고, 밴드활동도 중단했다. 유진으로 가서 여름을 보내고 8월의 2주간 투어때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는 것에 내 계획이었다. 그러다보면 완전히 거처를 옮길지 아닐지 알게 될거라 생각했다. 난 엄마가 화학요법을 받은지 이틀 후 유진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경유할 때 거울앞에서 그 어떤 데이트나 인터뷰에 갈때보다 더 신경써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대학에 간 이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집에 돌아갈 때마다 그랬다. 비록 엄마와 내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내가 그녀의 마음에서 멀어지지 않았다는 걸 상기 시키는 큰 박스가 매달 나에게 배달되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생필품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멕시코 여행에서 사온 가죽 부츠는 이미 부드럽게 길들여져서 오기도 했다. 난 내가 다 컸다는 걸 보이기 위해 엄마 눈에 부족해 보이지 않도록 신경썼다. 엄마는 내가 도착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잔뜩 준비했다. 나는 엄마의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었고, 얼마나 서툰 삶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유진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며 나는 늘 그랬듯 엄마가 나를 기다리는 기대를 살짝 했으나, 대신 아빠가 보였다. 나는 어릴때는 아빠의 호기로운 모습에 매료되곤 했었다. 아빠는 엄마와 달리 나를 성별에 상관없이 길렀으나, 일 때문이든 뭐든 같이 있는 시간은 별로 많이 갖지 못했다.

집에 와서 나는 서둘러 엄마를 찾았고, 조심스레 껴안았다. 엄마가 소파에 앉자, 나는 바닥에 앉아 엄마의 종아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기댔다. 엄마는 조금 약해졌지만 괜찮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한국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요리를 해주고 싶다했고, 엄마는 내일 아침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2주 안에 엄마가 일본에 살때 알게 된 친구 계아줌마가 방문할거고 그녀에게 요리를 배우라고 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엄마를 튼튼하게 해주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TV를 보다 엄마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가방을 가지고 방으로 갔다. 내 침실은 부모님 침실의 위에 있었고, 전형적인 10대 소녀의 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각종 포스터 등을 벽에 붙이면 엄마는 구멍 좀 그만 뚫으라고 했고, 끔찍한 중고 스피커를 구해 와서 색칠을 하다 망한 적도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예전에 밤에 몰래 나가 싸돌아 다니던 것을 생각하면서, 생각했다. 지금은 내 자유의지로 다시 여기에 왔고, 다시 어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 pixie cut : 픽시컷. 짧은 헤어스타일
   ex) Back in Eugene my mother sent me a photo of her new pixie cut.

▶ in for : 격게 될
   ex) By then I would have a better idea of what my family and I were in for, and whether or not I should move out indefinitely.

▶ in the interim : 그 사이 동안에
   ex) In the interim, Peter would visit.

▶ at odds : ~와 조화하지 못하는
   ex) Per usual, my dad drove aggressively, weaving in and out of traffic at odds with the naturally slow pace of the small college town.

▶ stumble across : 발을 헛디디다, ~을 우연히 발견하다
   ex) ~, which was when I first stumbled across the paid affairs he'd been scheduling with women online.

▶ slink off : 슬그머니 도망치다 (여기서는 슬그머니 내려앉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ex) She sat back down and I slinked off the leather couch and sat on the rug between her and the coffee table.

▶ for a buck and flip them for five : 1 달러에 사서 5 달러에 판다는 뜻
   ex) ~ my mon would buy these rarities tax-free from the PX for a buck and flip them for five.

▷ protico 포르티코 : 대형 건물 입구에 기둥을 받쳐 만든 현관 지붕

▷ coming home on mushrooms : 여기서 머쉬룸은 단순히 버섯이 아니라 환각제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 그나마 5챕터에 비해선 읽을만 해서 한 고비 넘긴 기분 ^^

 

Chapter 7  Medicine

우리는 숨죽이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고, 나는 엄마를 위해 매일 아침 토마토 주스를 만들었다. 할 수 있는 한국요리는 별로 없지만, 그거라도 해줄까 물으면 엄마는 괜찮다고 했고, 오뚜기 크림 스프만 원했다. 유진에는 H마트가 없어서 우린 작은 한인마트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샀다. 어릴때 엄마와 함께 그 선라이즈 마켓에 가서 엄마의 어릴적 추억돋는 식료품들을 샀고, 나는 한글로 된 제품명들을 읽어가며 물건을 찾는걸 도왔다. 나는 어릴때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웠다.

나는 콩글리쉬로 '크림스프' 라고 조용히 말했다. 한국어와 영어에는 있는 발음과 없는 발음의 차이가 있고,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그걸 콩글리쉬라고 한다. 스프와 모찌를 준비했지만 엄마는 아주 조금 밖에 먹지 않았다. 내가 자라면서 좋아했던 것 중 하나인 계란찜을 했지만 엄마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나는 실망감을 감추며 한 숟가락만 먹어보라고 했다. 넷째날 아침 엄마는 계속 토했다. 난 엄마가 내가 한 음식을 못 먹겠다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은 어떨까 싶어 서울카페에 떡국을 주문했으나 엄마는 역시나 조금 밖에 먹지 못했고, 그조차도 토했다. 다음날 엄마는 더 나빠졌고, 오후에 의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더 일찍 가기로 했다. 엄마는 거의 정신을 못 차렸고, 암클리닉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처음엔 자리가 없다며 기다리라고 했고, 아빠는 엄마가 곧 죽게 생겼다며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 겨우 자리를 얻었고, 영겁인듯한 시간이 흘러 의사가 왔다. 엄마는 탈수 증세를 보였고, 마그네슘과 칼륨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낮았다. 엄마는 입원을 해야 했고, 난 엄마의 물건을 가지러 집에 갔다.

날은 이미 어두웠고, 혼자 차에 남게 되자 나는 너무 슬펐다. 이기적이었던 내 모든 삶에 화가 났다. 은미이모가 아플때 좀더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것, 그녀를 돌보는 나미이모의 마음을 좀더 헤아려주지 못한것에 화가 났고, 좀더 일찍 엄마의 증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아빠에게 화가 났다. 내가 엄마의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을 때 엄마는 잠들어 있었고, 아빠는 집에 가서 쉬고 오라한 후 엄마옆에 있으면서 엄마의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는 2주간 병원에 있었고 말을 할 수 있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아빠와 내가 번갈아 엄마를 지켰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빠하게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아빠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이후 폭력적이 된 아버지를 엄마가 떠난 후에 태어났고, 싱글맘에게 길러지는 것은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들인 게일과 데이비드는 일찌감치 집을 떠났고, 6살 위인 론은 그를 괴롭혔다. 아빠는 겨우 중독에서 벗어났고 잘하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엄마의 병은 아빠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고, 어느날 아침 밤새 병원에 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왔더니 아빠는 토스트를 다 태워먹고 있었고, 술에 취해 흐느껴 울었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줘야 할 아빠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싫었다.

2주 후 마침내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가 목욕하는 것을 도왔다. 엄마의 머리가 많이 빠졌고, 엄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었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했다. 머리 카락일 뿐이고, 곧 다시 자랄거라고.

▶ three days in already : 이미 3일이 지나다
   ex) I figured, three days in already, maybe it wouldn't be so bad after all.

▶ ring up : (금전출납기에 가격을) 입력하다
   ex) ~, and I would hear the name of some prestigious college proudly mentioned, poking out of the Korean phrases she exchanged with my mother, ringing up out bean sprouts ahd tofu.

▶ pore over : 너무 좋아서 들뜬
   ex) My mom pored giddily over the new imports that came with the expansion : ~

▶ varying levels of difficulty : 여러가지 난이도
   ex) A small building at the bottom of the parking lot housed two or three classrooms separated into varying levels of difficulty.

▶ rote duty : 따분한, 기계적인 의무
   ex) While some approached this service piously, an opportunity to prepare traditional Korean fare, others regarded it as a rote duty and were perfectly content to order ten regarded it as a rote duty and were perfectly content to order ten boxes of Little Caecars, much to the delight of the students.

▶ A game : 최상의 경기력. 여기서는 최상의 경기력(아주 잘 먹기)을 끌어올리기 전에 먹는 에피타이저 정도로 해석
   ex) Later that evening, I had the brilliant idea of making gyeranjjim, a steamed, savory egg custard usually served as a side dish at Korean restaurants bringing ther A game.

▶ in search of : ~를 찾아
   ex) By four o'clock I discovered her curled over the toilet, pushing her fingers down her throat in search of relief.

▶ from which to pick : 어느쪽을 고를지
   ex) I used to mock her every time she said it, telling her it was an arbitrary perference when there were only three phases from which to pick.
(telling her 그녀에게 말하면서...에 주의. 엄마의 질문에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걸로 엄마를 놀리곤 했다는 뜻)

▷ 이제 좀 이 책에 익숙해 지는 건지, 이 챕터가 그런건지 비교적 잘 읽혔음. 엄마 아픈 장면이랑 아빠에 대한 얘기할 때 너무 짠해서 목이 막히더군 ㅠ.ㅠ

▷ fleece robe 에서 fleece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리스' 인거 같은데.....이렇게 후지게 발음하며 살았다는게 슬퍼기도 하고 ㅋㅋ 대체 판매자들은 왜 그렇게 이름 붙여 파는건데~

▷ 차가운 발을 엄마 허벅지에 댔다는 부분, 아이들의 엄마들 이름은 들어 본적도 없고, 누구 엄마로 불린다는 부분, 콩글리쉬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 공감가는 이야기들 ^^

 

Chapter 8  Unni

3주가 지났고 엄마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엄마를 돕기 위한 세 명의 한국 여성이 오기로 되어 있었고 계아줌마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3주 후에 LA에 사는 김아줌마가 올 예정이고, 또 3주 후엔 나미이모가 오기로 했는데 우린 그러지 않길 바랐다. 2년 동안 은미이모를 혼자 돌본 나미이모가 또 동생을 돌보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계아줌마가 오고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보다 몇 살 더 많은 그녀는 여러모로 든든했다. 계아줌마는 여러가지를 준비해 왔다. 그 중 하나는 씨앗이었다. 그건 적상추와 방울토마토와 한국고추씨였는데, 어릴 때 내가 고추를 쌈장에 찍어먹는 걸 보고 엄마가 놀란 적이 있다. 계아줌마는 내일 아침 씨앗을 심자고 했고 매일 아침 산책 후 물을 줄거라 했다. 엄마는 "언니 고마워." 라고 말했다. 언니는 한국여성들이 손위의 여성을 부르는 말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씨앗을 심고 산책을 했다. 아빠는 사무실로 갔고 아줌마는 나에게 좀 쉬라고 했다. 그동안 난 운동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는데, 부모님의 짐을 향해 운전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픈 이후 엄마는 운동을 강조했고, 어느 순간 난 엄마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난 그 전엔 학년에서 가장 빠른 아이였지만 6학년 때부터 곧 순식간에 친구들에게 따라잡혔다.  달리기에서 따라잡힌 이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때 같은반 아이가 익숙한 표정으로 중국인 또는 일본인이냐고 물었고, 둘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뭐냐고 했다. 난 아시아엔 그 둘 외에도 더 많은 나라가 있다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외계인이나 독이 든 과일처럼 여기게 하는 내 얼굴 땜에 당황해 그러지 못했다. 열두살 땐 그런 질문을 받고 싶었고 한국인 혼혈인게 자랑스러웠지만 순간 두려워졌고 그 사실을 지우고 싶었다. 엄마에게 점심도시락을 싸지 말라고 하고 인기있는 아이들을 따라 매점에 가서 그들과 똑같은 것을 주문했고, 황인종인 것에 대한 컴플렉스에 시달렸다. 한국인이 되는게 불편해서 아이들이 발음도 잘 못하는 정미라는 미들네임이 없는 척 했다. 학교에 한국인이 나 하나인게 어떤건지 엄마는 모른다며 불평을 했더니 엄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넌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운동을 마치고 가니 계아줌마와 엄마는 콩국수를 먹고 있었다. 난 내가 한국 음식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콩국수는 처음이었다. 여름에 먹기 좋고, 음식 냄새나 맛에 구역질이 나는 엄마에게 딱 좋은 음식이었다.  엄마의 성긴 머리카락은 깨끗하게 깎여있었고, 진즉 그리해주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빼고 그런게 서운하기도 했다. 계아줌마가 국물을 마시라 했고 엄마는 그렇기 했다. 화학요법을 시작한 이후 엄마가 그릇을 다 비운건 처음이었다. 저녁 때 계아줌마는 약식을 만들어 엄마에게 갖다줬다. 우리 셋은 견과를 먹으며 마스크 팩을 했고 엄마에게 메니큐어도 칠해줬다. 난 진즉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한게 미안했고 계아줌마가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계아줌마는 잣죽을 끓이고 있었다. 잣죽은 한국인들이 아플때 먹는 음식이다. 나는 나에게 만드는 걸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계아줌마는 본인이 하면 되니 걱정말라고 했다. 내가 엄마의 음식을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까 하다 관두고 그냥 고맙게 여기기로 했고 대신 엄마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엄마는 토마토 주스, 영양 드링크(?), 미숫가루 등을 먹었다. 끼니로 계아줌마는 죽이나 누룽지를 만들었고, 디저트로는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엄마 입술에 상처가 나서 모든걸 잘게 부수어 줘야 했고, 엄마는 진통제를 삼키기도 힘들어 해서 내가 잘게 부숴서 드렸다. 엄마의 칼로리를 적고 계산하다보니 내 입맛이 떨어져 난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우리가 심은 씨앗은 잘 자랐고, 엄마는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았다. 첫번째의 결과로 의사는 복용량을 반으로 줄였지만 첫번째 주는 역시 힘들었다. 나는 계아줌마없이 어떻게 엄마를 돌볼지 걱정이었다. 계아줌마는 한시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고마운 동시에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수 없음에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엄마를 태우고 링거를 맞으러 갔다. 어릴때 내가 운전을 배운 후 엄마를 태우고 운전하다보면 우리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용하다. 병원은 오리곤 대학 캠퍼스 안에 있었고, 어릴때는 그 건물에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는 길엔 엄마의 CD들을 열어보았고, 어릴때 함께 시끄럽게 부르던 노래를 조용히 부르며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계아줌마는 엄마처럼 머리를 민 채로 안방에서 나왔다. 내가 그랬다면 엄마는 뭐라고 했겠지만,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안았고, 아줌마는 엄마를 침대로 데려갔다.

그녀가 온 지 3주가 지난 후, 아줌마는 더 있겠다고 우겼다. 아빠랑 나는 불편했다. 아줌마는 음식을 그냥 두어 썩게 하는 일이 잦았고, 그런 비슷한 일들로 아빠와 부딪쳤다. 어느날 저녁식사 후 그녀는 손으로 쓴 종이 몇장을 엄마에게 내밀며 읽으라고 했고 엄마는 조용히 읽다 울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계아줌마가 왜 거의 한달 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무상으로 여기에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내가 이상한 집착을 하는건지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는 약에 취할 수록 영어보다 한국어를 많이 썼고 아빤 그걸 굉장히 힘들어 했다. 엄마와 둘이 병원에 다녀오면서 계아줌마에 대한 내 생각을 말했더니, 엄마는 계아줌마가 많은 도움이 된다며, 그녀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다음날 아침, 계아줌마는 엄마에게 달걀 반숙을 주었고, 나는 덜익은 음식 때문에 엄마가 감염될 수도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계아줌마는 한국에선 원래 그렇게 먹는다고 했고, 엄마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혼혈로서 청소년기를 겪어내느라 힘들었는데, 여기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니가 암만 노력해도 넌 엄마가 진짜 뭘 원하는지 결코 알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turn a corner : 고비를 넘기다
▶ just in time : 때마침
   ex) Three weeks passed and my mother began to turn a corner, regaining her strength by the end of June, just in time for her second treament.

▶ all-hands-on-deck : 모두 손을 모아 돕다
   ex) There was a plan in place for three Korean women to join us, a sort of all-hands-on-deck strategy.

▶ salt-and-pepper hair up : 희끗희끗한 머리
   ex) She wore her long salt-and-pepper hair up in a bun like a proper madam.

▶ in the bag : 확실하여, 보증되어
   ex) I thought I had it in the bag.

▶ at hand : 머지않아
   ex) ~ becomes an agonizing pockmark and self-denial the only remedy at hand.

▶ stick out : 눈에 띄다
   ex) ~ because it established that I stuck out, ~

▶ sound off : 큰소리로 의견을 밝히다, 마구 불평하다
   ex) I sounded off to my mother, who stared back at me blankly.

▶ hover over : ~의 위를 맴돌다
   ex) My mother hovered over her big blue ceramic bowl and guided the rest of the thin noodles into her mouth.

▶ herculean feat : 대단한일, 성과, 업적
   ex) Even with three off us there to labor, caretaking often felt like a herculean feat.

▶ up to speed : 정보를 주다, 상황을 이해시키다
   ex) She was up to speed and wanted to stay.

▶ in peril : 위험한
   ex) Fruit flies started to gather in the kitchen, and with my mother's immune system in peril, ~

▶ catch myself : 멈춰서다
   ex) ~; I caught myself trying to haggle the numbers down, ~

▷ twice-dead cousin : 무슨 뜻일까?

 

Chapter 9  Where Are We Going?

대학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방학때,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그것도 혼자 서울에 가서 연세어학당 섬머스쿨을 등록하고 은미이모와 6주를 보냈다. 우리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동물 고르기 게임을 했고, 저녁엔 치킨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나면 거실 바닥에 앉아 내가 숙제하는걸 이모가 도와주었다. 주말이면 가로수길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했다. 우리는 팥빙수를 시켜먹었고, 그것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완벽했다. 동물 고르기 게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난 아기를 뜻하는 원숭이였고 이모는 커리어를 뜻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모는 자매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고, 1등으로 졸업했으며 좋은 직장에 다녔다. 그녀는 내 두번째 엄마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나처럼 원숭이를 골랐다고 했다.

2년 반 후 엄마는 은미이모가 대장암 4기라고 했다. 이모는 할머니집을 정리하고 자신의 물건들을 오피스텔에 보관한 후 나미이모네로 갔다. 이모는 건강에 해가 될만한 것은 거의 하지 않았고 겨우 48살 이었기 때문에 난 이해되지 않았다. 이모의 병에 대해 검색해 보았지만, 그녀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거 외에 자세히 알지 못했다. 스물네번의 항암치료 후 발렌타이날 이모는 죽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을 마친 후 우리는 이모의 오피스텔로 갔다. 이모는 자식이 없어서 나와 세영에게 자신의 것들을 남겼고, 나는 이모의 은목걸이를 가져도 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건 자신이 생일선물로 준거라며, 그건 본인이 갖고 똑같은걸 사서 날 주겠다고 했다. 함께 목걸이를 차고 이모를 생각하자고. 엄마는 이모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남고 나와 아빠는 공항으로 향했다.

이모가 죽은 후 엄마는 달라졌다. 새로운 취미를 찾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림수업에 등록했고 나에게 자신이 그린 것들을 보내주었다. 처음엔 형편없었지만 차츰 나아졌다. 여러가지 물건들을 그렸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어 보내줬다. 은미이모의 유언 중 하나는 엄마가 교회에 다니는 거였는데 엄마는 가지 않았다. 은미이모의 죽음에서 엄마가 깨달은 사실은 스물네번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이모는 죽었다는 것이다. 암을 진단 받았을때 엄마는 딱 두번만 치료를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겠다고 했다. 

7월 마지막주 엄마의 두번째 항암치료가 끝나가고 있었고, 의사가 곧 종양이 줄어들었는지 확인할 예정이었다. 나는 8월 초 밴드 투어가 있어서 필라델피아로 돌아갔고, 투어가 끝난 후 남은 짐을 모두 싸 오리곤으로 아주 돌아올 작정이었다. 엄마는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막상 내가 공항으로 갈때 울었고, 내가 돌아오면 행복해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필라델피아는 3개월 동안 숲에 살다온 나에게 너무 더웠다.피터는 교외의 작은 대학에 비상근교수직을 얻었고, 경력을 쌓은 후 포틀랜드로 가서 둘다 직업을 갖기로 했다. 그러면 나는 주말에 엄마를 보러 다녀올 수 있다. 피터는 레스토랑에서 휴가를 얻어 밴드 투어를 함께 했다. 우리는 리치몬드와 애틀란타에서 며칠 공연을 한 후 버밍햄과 내슈빌에 슬쩍 들렀다. 가는 곳마다 더웠고 공연장, 밴 모두 열악했다. 부모님은 내가 집을 별로 그리워하지 않을거라 장담했지만,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슈빌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필라델피아로 곧장 갔다. 다음날 나는 짐을 쌌고, 내가 전화를 받았을 때 피터는 레스토랑 빠진걸 메꾸느라 바에 있었다. 아빠는 우선 앉으라고 했고, 검사결과 엄마의 치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미 두번의 항암치료로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고, 엄마 스스로도 그만두길 원한다는 알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전화를 바꿔 엄마는 엄마의 나라와 나미 이모에게 안녕하러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아직 나를 데려가지 못했다는 광장 시장의 빈대떡 얘기를 했고, 나는 울었다. 일주일 후엔 제주도에도 가자고 했다. 나는 엉엉 울었고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다. 

▶ stave off : 피하다, 간신히 모면하다
   ex) It was July, and we'd ordered patbingsu to share to stave off the humidity.

▶ to see me through it all : 힘든 시기를 견디게 도와주다
   ex) But then the monkey felt the most human, a companion to see me through it all.

▶ land :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다
   ex) She landed a job a an interpreter with KLM airlines on rotation between Holland and Korea, making her a natural translator for my father and me.

▶ move in with : ~에게 이사하다
   ex) She was moving in with Nami and Emo boo so they could help her wihle she went through chemotherapy.

▶ aside from : 제외하다
   ex) Aside from our occasional bachelor chicken night, she hardly ever drank.

▶ miss out on : ~을 놓치다
   ex) ,but I felt it was too important a career opportunity to miss out on.

▶ aptly named : 적절한 이름이 붙은
   ex) Out first show was at a small bar in Philadelphia aptly named The fire, as it was next door to a fire station.

 

Chapter 10  Living and Dying

나와 부모님은 서울에서 만나 2주를 보낸 후 함께 오리곤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피터가 나를 공항으로 태워다 주던 아침, 나는 피터에게 엄마가 살아 있을 때 결혼하자고 했고 아무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나미이모의 집으로 갔고, 엄마에게 열이 나 이모부가 침을 놔주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우리는 엄마가 회복되어 제주에 갈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 티켓은 물론 유진으로 돌아가는 티켓까지 취소해야 했다. 다시 나는 밤에, 아빠는 낮에 엄마의 병간호를 하는 시간들이 이어졌고 살기위한 몸부림이 계속 되었다.

아직 엄마가 자고 있는 아침에 나는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만한 것들을 가져다 주고 싶어서 병원 밖을 나와 배회했다. 엄마는 이젠 김치도 못 먹는다며 슬퍼했다. 나는 아빠가 재혼을 할거 같냐 물었고, 엄마는 아빠는 다시 아시아인 여자랑 결혼할거라 했다. 나는 너무 싫을 것 같았다.

재앙같은 휴가를 보내기 시작한지 2주 반쯤 지났을때 내가 병원에 도착하니 아빠는 소리를 지르고 있고 난리통이었다. 엄마에게 폐혈성 쇼크가 왔고 엄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식물인간처럼 살바에야 죽는게 낫다는 것에 항상 동의를 해왔다. 지금 엄마는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와 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므로 맑은 공기를 쐬러 밖으로 나왔고 북적이는 군중들을 피해 근처 바에 들어가 맥주를 사서 루프탑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는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행을 왔으므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이건 끔찍한 실수였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엄마는 앉아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휴가 중인 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결혼하자고 했다. 솔직히 그동안 내 머릿속엔 밴드에 대한 생각이 가득해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엄마는 모든걸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엄마가 없다면 난 엄마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민하는데 시간을 다 썼을 것이다. 난 피터에게 그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고, 피터는 좋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얼른 나아져서 유진으로 돌아가 외동딸이 결혼하는 걸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나는 웨딩플래너에게 우리의 사정을 얘기하고 3주안에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고, 그녀는 한시간 안에 체크리스트를 보내주었다. 다음날 성용이 웨딩샵에 데려다 주어 피팅을 했고,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주며 드레스를 골랐다. 이틀 후 병원으로 드레스가 도착했고, 나는 엄마 앞에서 입고 보여주었다. 나는 나미이모랑 성용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할거라는 걸 알았다. 엿세 후 엄마는 퇴원할 수 있었고, 담당 의사가 엄마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가족상을 선물로 주었다.

▶ in full force : 총력을 다해 완전히
    ex) My denial was still in full force.

▶ welling up :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ex) She said, welling up as she eyed the wilted white cabbage.

▶ in the aftermath : ~의 결과로
   ex) ~and I could see that in the aftermath, there would be a struggle to coexist.

▶ be in for : 좋지 않은 일이나 불쾌한 일을 당하게 되어 있다.
   ex) She must have known all along that this was what we were in for.

▶ prop A up : ~를 받쳐 넘어지지 않게 하다
   ex) He'd prop me up in front between his legs, and I'd hand on to the gas cap for support.

▶ go out on a limb :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
   ex) We had gone out on a limb, traveling to Korea against the doctor's orders.

▶ pregnant : 어떤 느낌으로 가득한, 그득한
   ex) There was a pregrant pause on the other end of the line, and it occurred to me I had no idea where Martha's Vineyard even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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