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지우개 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워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누구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것이 죽음이다.
선인장의 어떤 가시는 몸뚱어리에 박여 몸 자체로 둔갑한다.
어떤 사람에겐, 어떤 기억들이 바로 그렇다.
아픈 기억은 최종적으로 가시가 된다.
2
소유는, 소유하는 사람의 적합성에 따라 자유와 억압으로 구별된다.
연애 시절의 나-그는 적합성의 소유에서 이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의 유일한 윤리적 전제가 소유의 적합성이라고, 소유의 적합성을 최고조로 유지하는 좋은 전략으로서
결혼이라는 의례가 존재한다고.
그 시절의 나는 굳게 믿는다.
3
"더러워지면 새로 사 신는게 운동화지."
연애 시절의 남자가 이미 했던 말인데 그 말을 간과한 내 죄가 크다.
4
'깻잎' 문제로 확인한 것은 내가 파괴되고 있다는 자각이다.
무한한 축제라고 여겼던 사랑이, 결혼 후 오히려 나의 무한한 축제를 파괴한다고 느꼈을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다.
5
비밀이 없는 세상은 사막처럼 황막할 뿐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
단지 사막에 있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아름다운 건 아닐거예요.
다른 종족에게는 비밀로 해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더욱 아름다운 거잖아요.
6
우리 모두, 몸의 어느 반쪽은 비에 젖은 채 걷고 있어요.
7
그녀를 사랑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랑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나는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갖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천연스럽게 상대편을 장난감처럼 자주 취급하면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깊은 성찰도 갖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부서지지 않는 장난감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므로, 사랑은 두려워요.
8
결혼이란, 연애에서의 희푸른 그늘을 오로지 제거하는 합법적인 수단이라는 것.
이 땅에서 1대 1로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밤의 푸른빛을 팽개쳐 사랑을 단지 패각의 무덤으로 끌고 가는 숨 막히는 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9
기침은 오래 숨길 수 없지만 깊은 슬픔은 오히려 아주 오래 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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