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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2015년

박범신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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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관한 소설이라 했다.

읽는 동안 아빠 생각이 너무 많이 나면 어떡하나...그럼 책읽기가 힘들텐데....하는 우려도 잠깐 있었는데,

예상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도 우리 아빠랑은 많이 다른 모습의 아버지들이 나와서 였나보다.

 

평생 자식들에게 헌신하다가 어느 순간 다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

그래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우리 아빠는 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미처 그런걸 생각하기도 전에 자아를 잃으셨으니....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버지에게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는 자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런 딸이 아니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아빠에게 받은걸 전혀 갚지 못했으므로.....공평하지 못한 거래 관계에 있다가 끝나버렸으므로...

어쩌면 난 엄청난 채무자가 된 셈이다.

 

문득....내가 결혼을 좀 더 늦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이 좀 늦게 드는 대신에.....아빠에게 받은 걸 조금은 더 갚을 수 있었을까?

철이 들지 못했으므로 그마저도 갚지 못하고 내내 빨대를 거두지 않고 살았을까?

 

아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자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맑은 정신을 갖지 못하여, 맑은 정신이었을때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를테면 유언 같은 것도 하지 못하고

유지되는 생명의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분명하고 철저한 타입의 아빠 였으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을터였다.

그 이야기들을 다 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 아빠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유언장이라도 써 놓아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던 아빠의 생명은....결국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나보다.

그래도 남편이, 아빠가 살아 계심에 감사하면서.....그냥 옆에 있다는거 자체가 당연하다 여기고 살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거 자체가....아빠가 끝까지 가족을 위해서 하신 봉사이며 희생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그마저도....젊은날 뼈빠지게 일구어놓은 경제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내내 아빠에게 빚진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실 침대위에 누워서 우리쪽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간섭하던 아빠가....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살아계신듯 싶다.

입관식때 보았던 마지막 모습도 자주 생각난다.

오빠가 보기엔 조금 슬퍼보였다던, 내가 보기엔 우리를 향해 빙긋 미소지어 주는거 같던 그 얼굴이 생각난다.

아빠가 보고 싶다.

 

눈물을 짜내지 않고 되도록 덤덤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므로 읽는 동안에는 그냥 감동적이고 잼이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존경스런 작가의 소설을 또 한권 읽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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