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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공지영『즐거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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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녕, 세상에 좋은 결정인지 아닌지,
미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어떤 결정을 했으면 그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노력하는 일뿐이야.


2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그러려면 뭐 하러 말을 시키는지.
대답을 안 하면 말을 하라고 다그치고
대답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한다.
말에는 대꾸가 있어야 당연한 거 아닌가.


3

있잖아. 그런 말 아니?
마귀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고
하느님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다는 거?


4

"널 처음 가진 걸 알고 산부인과에 갔었어.
이건 엄마가 전에 소설에도 썼던 대목인데,
애기를 가졌다는 게 대체 뭔지 실감이나 났겠니?
병원에 누워 있는데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한다면서
이리저리 엄마 배 위로 뭘 왔다 갔다 하더니,
'들어보세요.' 하는 거야.
멀뚱하게 누워 있다가 귀를 기울이니까,
맙소사, 엄마 뱃속에서 무언가가 쿵! 쿵! 하는거 있지.
의사가 말했어.
'아기의 심장 소리 입니다. 아이가 건강하군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겠어.
세상에 내 속에서,
그것두 내 뱃속에서 다른 생명의 심장 소리가 들리다니,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고
우주 속에 또 다른 우주가 들어 있는 신비를 엿본 것도 같고,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자랑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어.
엄마가 그 후에 어떤 소설을 쓴들
그보다 더한 창조의 환희를 다시 느껴볼 수가 있겠니?
아마 다시는 없을 거야.
...그게 바로 너야, 위녕"


5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6

"내 말.....그냥 하는 말 아니야.
엄마를 보며 생각한 건데,
엄마는 엄마 자동차의 열쇠를 언제나 호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어.....
나, 친구 엄마들 많이 보았는데
강물 속으로 열쇠를 던져버린 사람들 참 많더라.
그래서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다시는 시동을 걸 수가 없더라.
엄마는 가끔씩 엄마를 버리고 시동을 꺼버리긴 했지만
열쇠를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엄마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다시 행복을 향해 떠날 수가 있었잖아.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건 그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엄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엄마,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힘들어하지 마, 후회하지도 말고..."


7

"잭 다니엘 아저씨....참 좋은 분이야.
엄마가 돈도 많고 성격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배도 나오지 말고......
뭐 그런 남자가 좋다고 했지만
그 사람 돈도 별로 없고, 얼굴은 못생기고, 배도 나오고, 그런데.....
늘 엄마를 즐겁게 해줘.
엄마가 슬플 때, 엄마가 화를 낼 때, 엄마가 술먹고 지난날을 생각하며 울 때도...
엄마를 웃게 만들어....
사람이 사는데 유머라는 것이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어.
그건 머리와 마음과 삶 전부를 아우르는
총체적 의미의 여유 같은 걸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위녕, 그 아저씨....
부인과 두 아들을 모두 제 소으로 묻어야 했었던 사람이야."


8

어떤 작가가 말했어.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우리의 성장과 행복은 그 반응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영어의 responsible이라는 것은 response-able이라는 거야.
우리는 반응하기 전에 잠깐 숨을 한번 들이쉬고 천천히 생각해야 해.
이 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이 일에 내 의지대로 반응할 자유가 있다, 고.


9

"사람들은 참 이상해.
엄마가 이혼한 사실만 중요하게 여겨.
하지만 그 이전에 엄마가 세 번이나,
자식을 낳고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다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아."


10

"내가 그리로 갈 수는 있으나 그는 다시는 내게 올 수 없다.
그러니 이제 나는 그냥 내 삶을 살아야 한다."

11

참 이상하다.
내가 힘들고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
세상에는 그렇게 이상하고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았는데,
내가 행복하고 내가 편안할 때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넘친다.
아니, 실은 그게 반대로 되는 것이었던가.


12

마음은 아팠지만 나는 이제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음, 뭐 딱히 맞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그걸 꼭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존재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13

사는 건 참 맘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싶었다.
내가 앉은 가시방석이 꽃자리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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