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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공지영『해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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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득 오늘 죽는다 해도 삶은 그것이 멈추는 순간까지 어쩌면 놀랍게도 평범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꾸로 그것이 마지막인 줄 모르고 겪는 마지막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싶었다.

그런 삶이 가장 빛나는 것이 아닐까.

잘 알 수 없지만 영원, 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입술가를 스윽 스쳐갔다.



2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시간의 종말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다음인지 기준이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3


떠나가던 이나가 아니라 보내던 엄마가 상처받았다는 말에 이나는 약간 놀라긴 했다.

그때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상처가 가져다주는 어둠은 이런 것이 또 있었구나, 이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상처에 갇혀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이기적이 되고 마는 것....



4


이런 맑은 바다, 이런 푸른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죄짓고 뺏고 사랑하고 배반한다.

태초부터 살아 온 바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보다도 우스울지도 모르는데.....



5


죽음을 헤아리지 않았을 때와 헤아렸던 때의 삶은 분명 달랐다.

백 년도 안 되는 삶을 헤아리고 나자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빼앗고 속이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6


내가 사랑하니 너는 내 거다.

내가 전에 보고 좋아했으니 너는 그때부터 내 거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그놈은 나쁜 놈이고 내가 그렇닥 하니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너는 그놈하고 말하면 안 되고 너는 그놈하고 말을 나누어도 안 되고

너는 나보다 그를 더 미워해주어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하는 세 살짜리 강박에서 벗어나십시오.



7


단테가 말하고 마르크스가 인용한 대로, 

"그들로 하여금 떠들게 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가 살아온 발자국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삶 전체의 궤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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