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책읽기/밑줄긋기

이동진 『밤은 책이다』

728x90
728x90

1

 

 

말하자면 밤은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부드러운 동화가 시작되는 시간일 거예요.

괘종시계가 열두 번을 치고 나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 있던 소년과 소녀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쓴 편지를 낮에 부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낮의 어른은 밤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밤의 아이 역시 낮의 어른을 동경하지는 않을 겁니다.

 

 

 

2

 

 

책을 통해 파악한 구체적인 지식의 몸체는 기억 속에 남지 않는 것 같아도,

그런 지식의 흔적과 그런 지식을 받아들여나가던 지향성 같은 것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고 또 쌓여서

결국 일종의 지헤가 된다고 믿으니까요.

 

 

 

3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저잉 있다.

물론, 누구라도 타인의 불행을 동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불행을 어떻게라도 극복하게 되면,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던 쪽에서 왠지 섭섭한 마음이 된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같은 불행에 빠뜨리고 싶다는 마음조차 생긴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소극적이기는 하나,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된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4

 

 

독일어로 된 심리학 용어 중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로 "피해"를 뜻하는 단어와 "기쁨"을 의미하는 단어가 결합된 이 용어는 번역하자면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기는 감정을 일컫지요.

타인에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내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남모르게 안도를 느끼고,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내게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고 할까요.

 

 

 

 

5

 

 

결국 가장 진부하고 가장 상투적인 표현도 그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가장 신선하고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넌더리가 나도록 지겨워진 일도, 닳고 닳은 행동과 뻔한 습관으로만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사랑도,

그 시작은 두근거림이었겠지요.

 

 

 

6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사랑의 불구성을 짐잘할 수 있다.

그는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사랑도 배워야 하는가.

일찍이 에리히 프롬이 그런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다.

인간은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습득하려고 한다. 예컨데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거나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왜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처럼 수월한 것은 없다거나 사랑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므로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따위의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에 대한 자신의 능력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을 유쾌한 감정놀음이나 우연한 몰입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는 한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면, 사랑이야말로 그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 이승우 "생의 이면"

 

 

 

7

 

 

행복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다고 말하는 책들을 가득 담은 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내가 마음을 아주 깊이 파헤쳐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충고다.

 

     -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8

 

행복이 지고지선의 가치로 알게 모르게 강여될 때,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종종 사람들은

자연스레 행복을 느끼는게 아니라 행복이라는 표준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그리고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현재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불행해하지요.

 

 

 

9

 

 

티베트 속담에 그런게 있다지요.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10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

 

 

 

11

 

 

여행의 이익은 단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 보는 데 있는게 아니고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오히려 평소 낯익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것에 경이를 느끼고 새롭게 다시 보는 데에 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행동적이어서, 도착점 혹은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밖의 것, 도중의 것,

과정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 미키 기요시 "어느 철학자가 보낸 편지"

 

 

 

12

 

 

"아마추어! 아마추어! 이 말은 학문이나 예술을 애정과 즐거움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싶은 열정 때문에 추구하는 사람들을 생업으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얕잡아 일컫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 일로 벌어들이는 돈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멸은 빈곤, 배고픔 또는 기타 강한 욕구가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진지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천박한 신념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일반 대중의 생각도 같으며, 따라서 그들도 같은 목소시를 낸다.

'전문가'에 대한 일반적인 존경심과 아마추어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실 아마추어에게는 예술이나 학문 자체가 목적인 반면, 전문가들에게는 수단일 뿐이다.

학문이나 예술을 가장 진지한 열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일 자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는 사람, 그래서 순수한 애정으로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최고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언제나 이런 아마추어들이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