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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내 취침 패턴이 유별난 데가 있긴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내 취침 시각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방학 때는 특히 심해졌다.
새벽 3시가 곧 새벽 6시가 되었고, 급기야 아침 10시에 잠이 드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침 10시는 곧 오후 3시에서 저녁 6시로 마침내 밤 10시로 늦어졌다.
그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밤 10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다.
한 바퀴 삥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보건복지부 광고에 나올 법한 건강하고 이상적인 취침이었지만
내 경우엔 뒤죽박죽 뒤집힌 취침 패턴이었다.
그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겨우 2주일 만에, 다시 한바퀴를 돌아
결국 새벽 4시에 자고 오후 12시에 일어나는 생활로 바뀌고 말았다.
시간은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도 그랬다.
제아무리 역마살 낀 탕아라도 고향의 아가씨들이 제일 예뻐 보이고
고향의 내 집이 가장 따뜻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2
데이트하면서 자기 밥값도 내지 않는 형편없는 인간이란 말은
엄밀히 말해 남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여자들이 데이트에 나가기 위해 쓰는 비용과 노력, 시간을 생각한다면
남자들은 생각 없이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을 것다.
만약 아니라고 우기는 남자가 있다면
왁싱으로 온몸의 털을 뽑아버리거나,
15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을 신겨서 서울의 청계천 광자 보도블록 위를
딱 2시간만 걷게 하고 싶다.
결국 아무리 우겨대도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3
부엌은 여자들이 판타지 공간이다.
그것은 분명 집 어딘가에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매일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요리하는 직장 여성은 많지 않다.
냉장고 안에는 인스턴트 식품들이,
냉장고 앞에는 배달 가능한 각종 밥집들의 번호가 적힌 광고지들이 잔뜩 붙어 있을 뿐이다.
당연히 부엌에서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일에 대해 여자들은 점점 더 무지해진다.
부엌은 점차 구체성을 잃고 추상화된다.
그리고 결국 '나의 아름다운 부엌'이란 판타지로 남는다.
4
기껏 값비싼 빌트인 오븐을 사놓고 그것을 파이 굽는 용도가 아니라
그릇을 수납하는 서랍으로 사용하는 여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사용하는 요리도구라곤 고작 햇반이나 3분 요리를 데울 때 쓰는
전자레인지 뿐이다.
직장 여성들의 부엌이란 기능적인 것과는 별개의 곳이다.
'웨지우드'나 '로열 코펜하겐'에서 나오는 화려한 장식용 그릇같이
쓰기 위한 것이 아닌 관상용!
부엌에서 쓰는 물건들의 용도 변경에 관한 예는 부수히 많다.
도시 여자들에게 냉장고는 그야말로 시체 보관소에 가깝다.
썩은 바나나와 사과, 곰팡이 핀 오렌지, 축 늘어진 샐러리, 상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팩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각종 반찬들까지.
신선한 것을 더 신선하게 보관하라고 만든 공간이었지만,
결국 냉장고의 역할은 죽어가는 것들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해주는 것뿐이다.
식물인간처럼 말이다.
신선함을 읽은 채소나 과일은 채소와 과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도시 여자들의 희망은 '냉장'이 아닌 '냉동'에 있는 걸까?
모든 걸 다 냉동실에 넣는 게 살림의 비법이라고 얘기하던
잡지사 선배 말이 떠올랐다.
시어머니가 준 콩, 마늘, 파슬리 같은 야채는 물론이고
케이크와 베이들 같은 빵 종류까지 전부 다 얼린다.
1개월 혹은 3개월 후에도 썩지 않고 멀쩡한 그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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