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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김영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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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통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이 고통이 영원하리라는 공포에 깊이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잔혹한 괴물이 수천 개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랫배를 찢어대는 듯한 통증에 자신을 내주려는 순간,

돌연 뜨거운 기운이 정수리 끝부터 발끝까지 퍼졌다.

고통은 허망할 정도로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마개가 뽑힌 어떤 구멍으로 모든 고통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남자 작가가 어찌 이리 출산의 고통을 잘 표현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ㅋ)

 

 

 

2

 

받아만 준다면 나는 그들 사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슬픔에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러니까 서러움에 가까운 감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마음이 차가워지는, 비애에 가까운 심사도 있다.

그날의 나는 후자였다.

마음에 서리가 낀다고 해야 할까.

심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눈가가 시렸다.

 

 

 

3

 

인간이라는 게 원래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는 식의 쉬운 결론을 그녀는 싫어했다.

그러나 뻔한 말들을 피해가다보니 해명하지 못한 질문들만 풀지 않은 이삿짐처럼 그녀의 정신을 채웠다.

 

 

 

4

 

"겪어서 안 될 일은 아예 겪지 않는 게 좋다."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뭔 일인지 모르겠다만, 할까 말까 싶은 일은 그냥 안 하는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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