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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손미나『스페인, 너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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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다 치자.
그러면 당신 나라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몇시에 그 장소에 나타날 것인가?'

그 질문에 영국과 일본 학생은 3시 20분전이라고 답했고
대부분의 다른 나라 학생들은 3시 5분 전이나 5분 후 정도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것은 한 멕시코 여학생의 답이었다.
그녀의 답은 바로 '네시 반' 이었다.
다들 황당해 하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답을 하는 거냐고,
그럼 상대방한테 무려 한시간 반을 밖에서
기다리라는 뜻이냐고 반문을 했더니 그 여학생의 답이 가관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 사람도 네시 반에 오면 되지, 왜 그렇게 일찍 와서 기다려?"


2

언젠가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간통죄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주 된통 공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다.
아무리 유교사상까지 들먹이며 애를 써서 앞뒤 서명을 해도 그들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무리 그것이 기환자와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감정을 법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해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곧 책임이기에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관계를 맺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애인이 바람을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감정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만일 사랑하는 이가 바람을 피웠다면
그것은 사랑을 지키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므로
슬퍼할수는 있어도 그 사람을 원망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
실제 생활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그들과 우리의 개념 차이를 확실히
엿볼 수 있는 예는 많이 있었다.

.....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이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결혼 후 시간이 많이 흘러도 항상 긴장하며
애인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부녀인 야디라가 너무나 멋있는 남자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다고 했을때도,
애인이 있는 파비올라가 새로운 스페인 애인이 생겼다고 했을때도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일단 축하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녀들의 도덕성에는 물론 문제가 있지만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느낀 사실에 대해서는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친구들은 내가 그 흑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나의 새로운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어도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고방식이 무조건 옳다거나 그들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개성과 차이를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는
자유와 열정의 나라 스페인에서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도 존중받고 또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서도
열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는 라티노들 삶의 원동력,
그 중심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뜨거운
심장이 고동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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