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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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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가 매번 늘어놓는 똑같은 잔소리에 지쳐서, 그리고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 어느 날 난 사랑하는 한 남자와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되겠지. 우리의 미래, 우리의 시골별장,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꿈끄면서 말이야. 결혼 첫해에는 자주 사랑을 나누겠지. 두번째 해에는 조금 시들해질 테고, 그렇게 이 년이 지나면 아마 보름에 한 번씩 섹스를 생각하고 한 달에 한 번 실행에 옮기게 될거야. 상황이 더 나빠지면 우린 서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야. 난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될거야-----난 더이상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할 테니까. 나는 아랑곳 않고 끊임없이 그는 자기 친구들에 대해, 마치 그들이 그의 진정한 세계라도 되는 양 떠들어댈 테니까.

우리의 결혼생활이 아슬아슬한 지경에 이를 때쯤, 난 임신을 하게 될 거야.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면 한동안은 서로 더 가깝게 지내겠지. 하지만 상황은 곧 예전 상태로 되돌아 가고 말거야.

그때쯤이면, 난 어제---또는 그저께, 분명히 알 수 없다---얘기를 들었던 그 간호사의 숙모처럼 몸이 불기 시작할 거야. 다이어트를 시도하겠지만 매일, 매주,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불어나는 체중에 난 두 손을 들고 말 거야. 그러고는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그 마법의 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겠지. 마지못해 서둘러 치른 관계를 통해 애도 한둘쯤은 더 생길 꺼야. 난 모두에게 말하겠지. 아이들 때문에 산다고. 실제로도 아이들 때문에 살 수 밖에 없을 테고.

사람들은 우리를 여전히 행복한 부부로 여기겠지. 하지만 그 행복의 겉껍질 안에 숨겨진 고독, 회산, 체념은 아무도 모를 거야.

어느날, 나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걸 눈치채고 간호사의 숙모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우거나 또다시 자살을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때쯤이면 난 늙고 비겁해져 있을 거고, 날 필요로 하는 두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거야. 아이들을 키워 자리잡게 하기 전에는 난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지 못하겠지. 그래, 난 자살하지 못 할 거야. 기껏해야 소란을 피우며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겠다고 위협하겠지. 그러면 그는, 모든 다른 남자들처럼 한발 물러설 거야. 나를 사랑한다고,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다짐하겠지. 그는 추호도 생각지 못할 거야. 내가 진짜 떠나기로 결심하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며, 자잘한 결점은 있어도 그만한 남편이 어디 있고 또 애들의 상처는 얼마나 크겠느냐며, 엄마가 하루 종일 늘어놓는 한탄조의 잔소리를 들으며 부모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 외에 내겐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는 것을.

이삼 년이 지나면, 남편에게 또다른 여자가 나타날 거야. 나는 또다시 그 사실을 알게 되겠지---내가 직접 목격하더나 누군가의 고자질을 통해---하지만 이번엔 난 모르는 척하게 될 거야. 첫 여자가 나타났을 때 온 힘을 다해 싸웠는 데도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면 차라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엄마가 옳았다고 말이지.

그는 여전히 자상한 남편일 거야. 나도 계속 도서관에 나가 일을 하겠지. 극장 앞 광장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끝까지 읽지 못할 책들을 붙들고 씨름하며 10년, 20년, 50년이 지나도 똑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겠지. 단 샌드위치를 삼킬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계속 몸이 불 테니까. 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돌봐 주기를 바랄 테니 술집에도 더 이상 갈 수 없을 거야.

그때쯤이면, 난 행동에 옮길 용기는 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자살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거야. 어느 날 나는 산다는 게 다 그런거라는, 삶은 아무것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거야. 그러고는 그 삶에 적응해가겠지.


2

영하 오 도가 넘는 날씨에,
등이 깊게 팬 붉은 야회복을 입고
초점을 잃은 흐릿한 눈을 한 채
류블라냐의 거리를 헤매는 한 여자를 본 적이 있지.
술에 취했구나 싶어서 도와주려 했지만,
그 여자는 내 외투를 거절했어.

아마도 그녀의 세계가 여름이었거나,
그녀의 몸이 그녀를 기다리는 누군가에 대한
욕망으로 뜨거워져 있었을 거야.
그 누군가 그녀의 망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살고 죽을 권리가 있는 거야.
안 그래?


3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ㄷ.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진정한 사랑이란 시간에 따라 변모하고, 성장하고,
계속 새로운 표현 방식들을 찾아낸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부모가 어린아이였던 그녀를 사랑한 것처럼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그녀는 자신의 욕망 대부분을 희생시켰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결혼생활은 이제 끝장이라고 털어놓은 날,
베로니카는 아빠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고 협박한 끝에
결국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둘 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리라는 건 짐작도 못 한채.

일자리를 찾아야 했을 때,
그녀는 막 독립한 슬로베니아에 자리를 잡은 신생 회사가 내 놓은,
누구나 솔깃한 제안은 거절하고,
보잘것없지만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공공 도서관의 일자리를 택했다.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했고,
상사들이 그녀를 어떤 위협으로 여기지 않도록 행동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고,
승진을 위해 다툴 의사는 조금도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월말이 되면
꼬박꼬박 나오는 봉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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