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로 그거야. 나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불행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야.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어. 부자, 가난한 사람, 권력자, 비참한 사람, 내 눈과 마주치는 그 모든 눈들 속에서 내가 읽은 것은 무한한 번민이었어. 언제나 감내할 수는 없는 슬픔....사람들이 입밖에 내어 얘기하진 않지만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고. 내말 듣고 있는거야?" "듣고 있어. 지금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야. 당신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겠군." "더러는 행복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그들이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워. 결혼을 해야지, 집을 사야지, 아이는 둘을 낳고, 시골에 별장을 사야지. 그 계획들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들은 마치 투우사를 노리는 황소같아.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과녁이 어딘지도 모른 채 달려들지. 자동차를 사고, 잘하면 페라리를 사게 되기도 해. 그들은 삶의 의미가 그런 것에 있다고 믿고, 결코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는 마음속의 슬픔이 그들 눈동자에 드러나고 말지. 당신은 행복해?" "모르겠어" "모든 사람이 불행한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다만 사람들이 늘 바쁘다는 건 알고 있지. 야근을 하고, 자식들과 배우자를 돌보고, 경력을 관리해. 자기 학력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내일 할 일에 대해, 사야 할 물건들에 대해 생각해. 남들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물론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 '난 불행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지. '나는 아주 잘 지내요. 원하던 모든 것을 가졌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물어.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죠?' 대답은 이래. '난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어요. 가족, 집, 직업, 건강....' 나는 또 물어. '잠시 멈춰 서서 인생이 단지 이것뿐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적은 없나요?' 대답은, '그래요. 인생이 뭐 별것 있나요.' 나는 재차 물어.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가 일, 가족, 다 자란뒤에는 당신을 떠나게 될 아이들,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친구나 다름없게 될 아내나 남편에게 있단 말인가요? 언젠가 당신은 일도 그만둘거에요. 그때가 되면 무얼 할 건가요?' 그 질문에 그들은 대답하지 않아. 말을 돌려버리지. |
2
십 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과 아내가 있어.
그들은 처음엔 매일밤 사랑을 나눴지.
그런데 이제는 일 주일에 한 번밖에 사랑을 나누지 않아.
하지만 그건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야.
그들은 언제나 함께하고, 서로 지지하고 동질감을 느끼니까.
남편은 아내가 일 때문에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할 때 슬픔을 느끼고,
아내는 남편이 출장을 떠날 때 불평을 하지만 그것이 그의 일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모두 뭔가가 결핍되고 있다고 느껴.
하지만 그들은 충분히 성숙한 성인들이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
그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일과 아이들에게 바치고,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점점 덜 생각하게 돼.
하지만 겉으로 볼 땐 모든 것이 아주 잘 되어가고 있겠지.
둘 사이에 다른 남자가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들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해.
하지만 그게 뭔지는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점점 더 서로에게 의존하게 돼.
나이를 먹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멀어져만 가지.
그들은 몰입할 다른 대상을 찾으려고 애써요.
독서, 자수, 텔레비전, 친구들.
저녁식사 중이나 식사 후에도 대화도 나누고.
하지만 남편은 쉽게 화를 내고 아내는 이전에 비해 말이 없어지지.
그들은 점점 더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걸 알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하오.
그래서 결국 결혼이란 원래 그런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하지만 친구들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들은 남들에게 자기들이 행복한 부부라는,
두 사람이 서로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그들의 공통 관심사니까.
그즈음에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고 남편에게는 다른 여자가 생겨.
물론 그 관계도 진지하거나 심각하진 않아.
중요한것, 필요한것, 근본적인 것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변화를 시도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으니까."
3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저녁 행사 참석자들이 나누게 될 화제 목록을 떠올려보았다.
1. 외모에 대한 논평.
"아주 우아하십니다." "드레서 정말 예쁘네요." "얼굴 참 좋아 보이세요."
그러고는 집에 돌아가면 사람들 옷차람이 전부 다 형편없었고 낯빛도 환자처럼 창백했다고 떠들겠지.
2. 최근에 다녀온 휴가.
"아루바에 꼭 가보셔야 해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에요." "여름날 저녁에 칸군의 바닷가에 앉아 마티니를 마시면 정말 끝내줘요."
사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즐거운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그들은 다만 며칠 동안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 많은 돈을 썼으니 그걸 즐긴 척 애써야 한다.
3. 역시 여행 이야기(이번엔 잔뜩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
"리우데자네이루에 다녀왔는데, 그 도시에 얼마나 폭력이 난무하는지 당신들은 상상도 못 할거에요." "캘커타 거리의 빈곤은 정말이지 끔찍하더군요."
사실 그들은 거기 있는 동안엔 스스로가 힘을 가졌다고 느끼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특권의식을 누리기 위해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의 현실엔 비참함이나 폭력은 없다고 위안하며 말이다.
4. 새로운 민간요법 소개
"일 주일 동안 밀싹 즙을 복용하면 머릿결이 정말 부드러워져요." "나는 비아리츠에 있는 스파에서 이틀을 보냈어요. 그곳 물은 모공을 열어주고 체내 독소를 제거해 준답니다."
다음주에 그들은 밀싹엔 어떤 효등도 없고 어디의 물이건 간에 더운물은 다 모공을 열어주고 독소를 제거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5. 남 얘기.
"아무개 씨를 못 본지 오래됐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신대요?" "아무개 여사가 사정이 어려워서 아파트를 팔았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사람들은 파티에 초대받지 않은 문제의 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들은 마음놓고 험담을 한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가서는 순진무구하고 동정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그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인데."
6. 테이블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개인적인 사소한 바람이나 걱정들.
"내 삶에 뭔가 새로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애들때문에 정말 걱정이랍니다. 요즘 아이들은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을 듣고, 문학 작품은 읽지도 않아요."
그들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논평을 기다린다.
그러고는 자기 혼자만 그렇게 느끼고 사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가는 것이다.
7. 오늘처럼 지적인 저녁 모임이라면 중동전쟁, 이슬람 문제, 새로운 전시회, 요즘 유행하는 철학,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환상적인 책, 더이상 예전 같지 않은 음악 등에 대해 토론한다.
우리는 우리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총명하고 분별있는 의견들을 제시할 것이다.
겨우 이런 종류의 저녁 모임에 어울릴 화젯거리를 갖기 위해 전시회에 가고, 지겨운 책을 읽고, 따분한 영화를 보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좋은책읽기 >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0) | 2010.04.27 |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 | 2010.04.27 |
에쿠니 가오리 『호텔 선인장』 (0) | 2010.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