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의 제목을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했다고 하자,
아내가 묻는다.
"당신, 진짜로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해?"
나는 약간 주저하다 대답했다.
"응, 가끔...."
아내는 잠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바로 몸을 내 쪽으로 향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만족하는데...."
내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는데,
아내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내 가슴을 깔끔하고도 깊숙하게 찌른다.
"아주 가끔...."
2
기억은 언제나 자작극이다. 그녀의 기억과 일부 겹치기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의 슬픈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시렝 대한 '해석과 편집'이 실제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의미는 해석과 편집의 결과다.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는 그리 큰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일부의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낸 내 '의미부여'다. 그래서 옛 연인을 만나면 절대 안 되는 것이다. 해석과 편집으로 인한 왜곡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반나절을 걸어 다녔던 초등학교까지의 그 먼 길이 불과 몇 킬로미터에 불과하단 것을 확인했을 때의 허전함과 같다. |
3
남자들의 결과 지향적 태도는 가족들과 놀러갈 때도 확연히 드러난다.
남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도착해서 빨리 밥 해먹고 돌아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자들에게 여행이란, 목적지에서 밥 해먹는 시간뿐이다.
준비과정은 여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시작된다.
여행지를 선택하고, 장을 보고,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사는 것도
당연히 여행에 포함된다.
가는 길, 돌아오는 길도 여행에 포함된다.
그래서 아내들은 차안에서 아이들과 먹을 과자, 과일, 커피를 챙긴다.
고속도로 휴게실에도 꼭 들러 아이스크림과 호두과자를 사야 한다.
갓 구운 따끈한 호두과자를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찍어먹는 그 맛 또한,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4
문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명함을 건네는 행위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의 권력관계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다.
서열이 정해져야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회직 지위, 연배의 순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상호작용의 룰이 애매한 상태처럼 견디기 힘든 상황은 없다.
남자들의 상호작용 원칙이란 아주 간단하다.
윗사람은 입 꽁지를 내리고, 아랫사람은 입 꽁지를 올린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발정기를 앞둔 수컷들이
암컷을 앞에 두고 힘겨루기를 한 결과
약한 녀석들이 꼬리를 내리는 것처럼,
명함에 적힌 사외적 지위가 파악되는 순간부터 둘의 표정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입 꽁지를 내리며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입 꽁지를 올리며
바로 만연의 웃음을 띤 표정이 된다.
꼬리를 내리는 행위의 또 다른 표현이다.
기회가 되면 잘 관찰해보기 바란다.
슬프지만 아주 정확한 사실이니까.
남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5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3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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