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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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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2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달은

모자란 시간 때문에 한없이 짧다.

또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달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만큼

한없이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한달동안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랑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도 있다.


3

철이 든다는 것은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지닌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4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5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는

거대한 불행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이

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6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것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 오는 부메랑 일 수도 있는 것이다.


7

"사랑이란.....

사랑이란 말이야. 사랑에 빠지지 않아야겠다고 조심 또 조심을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영원 무궁토록 사랑하겠다고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알아?"


8

충분히 예상했던 말이었으므로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럴 때 놀랐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사랑하지 말라고, 이 사랑을 멈추라고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는 대답의 의무가 있었다.


9

"해질무렵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메면 안돼. 그러다 하는 저편에서 푸른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환한 낮이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에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10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11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12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13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14

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말한다.

그럴줄 알았어.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은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예감속에 오늘이나 내일은 없다.

오직 '언젠가'만 있을 뿐이었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15

사랑조차도 넘쳐 버리면

차라리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16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17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었다.


18

내가 누군가에게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그것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내겐 사랑에 꼭 필요한 맹목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이 하나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탐색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이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 것이므로.


19

한 달이든 석 달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에 어떤 표시가 나타나야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것인지 나는 정녕 알 수 없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겠어,라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20

"너 이런 말 알아? 결혼은 여자에겐 이십 년 징역이고, 남자에겐 평생 집행 유예 같은 것이래.

할 수 있으면 형량을 좀 가볍게 해야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열심히 계산해서 가능한 한 견디기 쉬운 징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21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22

사랑의 배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꿈 속에서도 생각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잊어 주는 것이다.


23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24

애시당초 방을 두 개 달라는 주문 따위 나는 할 생각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영화에서나 소설에서 그런 연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냉소했다.

방이 하나든 둘이든 이루어질 일은 다 이루어지며,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어떻게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25

사실을 말하면 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중이었다.

이것이 사랑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한쪽 어깨를 빌려 주고 기대는 것, 이것이 사랑일까....


26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27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여 줄 수 있다.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28

언젠가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보여 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므로 결혼한다면, 결혼으로 서로의 사랑이 물처럼 싱거워진다면.


29

남김없이 다 솔직해 버리면 사랑이 누구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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