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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읽기/밑줄긋기

공지영 『착한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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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통은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나보다 더 크게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우리가 스스로 위안할 뿐


2

이를테면 사랑은 그렇게 온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날마나 바라보던 그

낯익은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흐린 아침, 가까운 산이 부드러운 회색 구름에 휩싸이고 그 낯익은 풍경이

어쩐지 살아 있었던 날들보다 더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할때,

그때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버렸을 한 타인의 영상이 불쑥 자신의

인생속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느낄때....

그 느낌이 하도 홀연해서 머리를 작게 흔들어야 그 영상을 지워버릴 수 있는 그때.


만일 그것이 첫번째 사랑이라면,

첫번째가 아닌 사랑이 도대체 세상에 있을까마는,

네가 마지막 사랑이어야만 한다고 확신하지 않는 연인이 이 세상에

도무지 존재할까마는,

마치 미끄럼틀을 타고 있는 것처럼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그 끝에 도달해 버리는 것이다.


먼 옛날, 아주 작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을때,

인간이 거대한 자연을 경외하고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귀울일줄 알아 그 대가로

예지력을 가지고 있었을때 인간들은 아무도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다.

사랑의 대가로 치러야 할 일이 너무 많은것을 알았던 것이다.


3

손가락을 걸면서 우리 영원히 사랑하자고 하는 말은, 설사 그것이 우리 영원히

죽지 말자, 하는 말보다 더 허황된 것이라 해도 그 순간 그들은

이미 영원의 일부를 살고 있는거니까.

인간은 그 순간만은 영원의 입구에서 영원이라는 아득하고 도달할 수 없는 그 단어가 주는

그 황홀함을 맛보는 법이니까


4

" 고통이라는 것은 말야......고통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그것이 끝나지 않을거라는 공포에서 오는거야......하지만 이것도 끝나.....

끝난다는 사실을 생각해.....길게 느껴져도.......영원히 계속된다고 느껴지는건, 바로 고통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그렇게 겁을 주는 거라구.......

정인아, 기억해.....설사 그것이 길게 느껴진다 해도 고통은 언젠가 끝난다는거......."


5

웃음은 위로 올라가 증발되는 성질을 가졌지만 슬픔은 밑으로 가라앉아 앙금으로 남는다고.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은 오래오래 간직되는 성질을 가졌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상처라고 부른다고 했다


6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걸 명수는 안다.

그건 불행한 사람이 불행하다고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와는 다른 일이었다. 행복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실체가 어딘가에서 살고 있고 자신만이 거기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불행한 것이다


7

하지만 사람마다, 경우마다 모든 것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라고 스스로 확신하는 그 순간에조차,

모두 그저 제자신의 경우에 비춰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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